은행 기업구조조정 잘 끝낼까

  • 입력 2009년 2월 4일 03시 01분


작년 당기순이익 7조9000억… 전년대비 47.4% 급감

대손 충당금 큰 부담 “워크아웃하다 워크아웃 당할라”

《국내 은행의 지난해 4분기(10∼12월) 순이익이 8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는 등 은행의 수익성이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 올해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은행의 실적이 또 한 번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은행의 위기’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조만간 금융권 구조조정이 시작될 수 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일부 은행은 건전성을 떨어뜨릴 소지가 큰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나 퇴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 코가 석자’인 은행들이 금융 당국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기업 구조조정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금융권에 확산되고 있다.》

○ 작년 4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선 은행권

금융감독원이 3일 내놓은 ‘은행 영업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8개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7조9000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7조1000억 원(47.4%) 감소했다.

지난해 4분기만 놓고 보면 은행들은 3000억 원의 순손실을 냈다. 분기 기준 실적이 적자를 낸 것은 2000년 4분기 4조6000억 원의 순손실 이후 처음이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출금을 떼일 것에 대비해 은행들이 대손충당금을 미리 많이 쌓아뒀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지난해 총 9조9000억 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최근 워크아웃 및 퇴출 대상으로 선정된 16개 기업과 관련된 충당금만도 1조 원에 이른다. 충당금 적립액은 2005년과 2006년 5조 원을 넘은 뒤 2007년 4조5000억 원대로 줄었다가 작년에 급증했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경기 하강 속도가 너무 빠르고 범위도 넓어서 현재의 충당금으로는 부실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조치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크게 낮아진 반면 예금 금리는 별로 안 떨어진 점도 은행의 수익성을 악화시킨 요인이다.

이에 따라 대출자산 대비 이자수익의 비율인 순이자마진은 2006년 2.64%에서 지난해 2.29%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 은행들이 3.3%대를 유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 은행 수익성 올해는 더 나빠질 듯

문제는 이런 수익성 악화 요인들이 당분간 개선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지난해 4분기 은행들이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한 중소기업은 671개로 2005년 2분기(720개) 이후 가장 많았다. 올해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기업이 적지 않을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은행의 충당금 적립 부담은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4일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됨에 따라 펀드 상품을 종전처럼 쉽게 팔지 못하게 된 것도 은행의 수익성에는 타격이다. 지난해 은행의 수수료 이익이 4조2000억 원으로 2007년보다 5000억 원(10.6%) 감소한 상태에서 펀드 판매 자체가 힘들어지면 수익은 더 큰 폭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부 은행은 올해부터 지점에 펀드 판매 목표치를 내려보내지 않을 정도로 수수료 이익의 감소를 각오하고 있다.

주재성 금감원 은행업서비스본부장은 “경기와 기업 구조조정 등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올해 수익 전망도 밝지 않다”고 말했다.

○ 정부-은행 동상이몽(同床異夢) 계속될 듯

이런 상황에서 은행이 한계기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 퇴출로 부실여신이 급증하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크게 떨어진다.

따라서 은행들은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했다가 나중에 은행 구조조정이 추진될 때 역풍을 맞는 사태를 걱정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BIS 비율에 신경 쓰지 말고 대출을 적극적으로 하고 구조조정도 엄격히 하라”고 독려하지만 은행들은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결국 BIS 비율을 따질 것으로 본다. 이른바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먹는 ‘토사구팽(兎死狗烹)’에 대한 걱정이다. 일부 은행의 경영진은 정부가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에 대해서는 인사 문제까지 깊숙이 간여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와 은행들이 위기 극복에 힘을 모으되 이로 인해 건전성이 악화돼도 추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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