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 시행, 증권 업계 지각변동

  • 입력 2009년 2월 4일 19시 04분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의 실시로 국내 금융업 전반에 대대적인 지각 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영국도 1986년 한국의 자통법의 모태(母胎)라고 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법(FSA)이 실시되면서 금융 산업의 대대적인 '빅뱅(Big Bang)'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증권회사의 90%는 도산했다. 일부는 은행과 외국계 투자은행(IB)에 인수합병(M&A)됐다. 호주에서는 자통법과 비슷한 내용의 '금융서비스개혁법'이 2001년 시행된 이후 자본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맥쿼리'와 같은 글로벌 IB가 탄생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는 대기업 계열의 증권사들이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대기업들은 계열사 증권사를 통해 그룹사와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급여를 줄 수 있다. 또 은행 예치자금 가운데 약 20조 원 정도가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증권사는 이 돈으로 대출이나 투자 등을 할 수는 없지만 자사(自社)의 다양한 금융 상품으로 돈이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시각은 이미 증시에도 반영됐다. 금융 업종의 침체 속에서도 삼성그룹의 자금을 수신할 수 있는 삼성증권 주식은 연일 최고의 추천 종목이 되고 있다.

경제평론가인 박경철 씨는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현대기아차 그룹 등 대기업들이 증권업에 적극 뛰어들었다"며 "이제 대기업들이 금융자본을 이용하지 않고도 계열 증권사가 운용하는 펀드로 경쟁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펀드 자본주의'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증권사들이 직접 자산운용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중소형 자산 운용사는 생존 경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자산운용협회 관계자는 "현재 50여개의 자산운용사 중 경쟁력이 없는 운용사가 20여개에 이른다"며 "이들 상당수는 대형 증권사나 외국계 IB의 먹히거나 치열한 경쟁에 밀려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는 국내 증권 업계가 M&A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증권연구원 신보성 금융투자산업실장은 "현재 국내 증권사 등의 업무 영역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당장 M&A를 해도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증권 업계는 대기업 계열의 증권사와 은행자본 계열의 증권사들로 크게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소유의 증권사는 계열사의 지원과 M&A를 통해 대형화로 가고, 자본금 확충이 상대적으로 쉬운 우리투자, 하나대투, 굿모닝신한 등 은행계 증권사들은 증권 업계의 지각변동에서 한 축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으로 증권거래 수수료만을 받는 일부 증권사들도 틈새시장을 형성하면서 살아남을 것으로 보인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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