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낮춰도 발길 뜸해… 공급과잉 혹독한 ‘구조조정’
극심한 경기침체 여파로 상가 권리금을 포기하고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서울 시내 유명 상권의 일부 신설 상가에서는 ‘보증금 면제’까지 내걸고 상인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입점률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 서울 핵심 상권 썰렁한 풍경
서울 강남의 핵심 상권으로 꼽히는 압구정동과 청담동에서도 권리금 포기가 잇따르고 있다. 압구정동 S공인 사장은 “현재 간선도로변에 있는 점포 30개 정도가 권리금 없이 매물로 나와 있다”며 “한때 3억 원 이상이었던 권리금이 사라졌는데도 가게를 찾는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와 청담 사거리 주변에는 ‘임대 문의’라는 안내문이 붙은 점포가 한 집 건너 한 집꼴이다.
서울의 대표 상권으로 불리는 명동의 한 상가건물은 14개 층 가운데 2개 층에서만 세입자들이 영업하고 있다. 노른자위 자리인 1층도 지난해 음식점이 문을 닫은 뒤 몇 달째 비어 있다. 이 건물 관리소장은 “권리금이 없는데도 입점 문의가 끊겼다”고 말했다. 이곳 상인들은 명동에서는 보증금 반환을 둘러싸고 세입자와 상가 주인이 소송을 벌이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보증금 면제 혜택을 내건 상가도 등장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1월 서울 동대문상권에서 문을 연 굿모닝시티는 분양률이 저조하자 50만∼100만 원 정도인 월세 석 달 치만 내면 보증금을 면제해주는 임대 조건을 제시했다.
임대 대행사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조건인데 상가가 너무 비어 있어 특단의 조치를 내놨다”고 말했다.
○ 청계천 이주 상인 입점률 13% 그쳐
상가경기가 급속도로 꺾이자 신규 분양 상가들은 앞 다퉈 분양가를 낮추고 있다.
서울시가 청계천 주변 상인을 이주시키기 위해 송파구 문정동에 짓고 있는 복합쇼핑몰 가든파이브 상가는 최근 분양가의 20%였던 계약금을 15%로 깎는 등 계약조건을 크게 완화했다. 예상과 달리 청계천 상인들의 입점률이 13%에 그쳤기 때문이다.
고분양가 논란을 불러왔던 같은 구 신천동의 잠실 주공 재건축 상가들도 비공식적으로는 현재 분양가를 초기보다 10% 정도 할인해 분양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서울 명동의 주상복합상가 아르누보센텀은 20일 정도 걸리는 인테리어 공사 기간에 임대료를 면제해주는 등의 혜택을 내걸었지만 건물 3층은 텅 비다시피 한 상태.
상가정보업체인 SG뱅크 상가경제연구소 유영상 소장은 “불황이 닥치면 ‘매출의 척도’인 권리금부터 떨어지고 보증금과 임대료가 동반 하락한다”며 “과잉 공급된 상가들이 경기침체 여파로 심각한 구조조정을 치르고 있어 상가경기는 당분간 침체가 이어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