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여파 공급 줄어도 빈사무실 더 늘어
서울 강남구 삼성동 테헤란로에 접한 M빌딩엔 최근 빈 사무실 3306m²(1000평)가 새로 생겼다. 정보기술(IT) 업체인 A사가 인력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하면서 사무실을 서울 구로디지털단지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IT 경기 불황으로 경영여건이 최악인데 매달 월세와 관리비로 1억 원을 지출하는 게 너무 부담이 돼 옮겼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들이 경비 절감을 위해 임차료가 싼 곳으로 사무실을 옮기거나 공간을 축소하는 사례가 늘면서 서울지역 오피스빌딩의 공실률이 치솟고 있다. 이는 지난해 서울지역에 새로 공급된 오피스 면적이 전년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는데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 경기침체의 파장이 오피스시장에도 몰아닥친 것으로 풀이된다.
○ 공급면적 줄어도 공실률 급등
지난해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금융권 대출이 크게 줄고 건설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서울지역 오피스빌딩 공급이 크게 감소했다. 알투코리아부동산투자자문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 새로 공급된 오피스면적은 64만 m²로 전년(148만 m²)의 43% 수준에 그쳤다.
오피스 공급이 부족하면 공실률이 낮아져야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빈 사무실이 늘고 있다. 불황의 골이 깊어지는 탓이다.
상업용 부동산 리서치업체인 포시즌I&A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오피스 공실률은 3분기(7∼9월)까지 매 분기 말 1.3∼1.5%였지만 4분기 말에는 1.8%로 상승했다. 올 2월 5일 현재는 2.1%로 높아졌다.
3개월 이상 비어 있는 장기 공실도 증가 추세다. 서초구 양재동 T빌딩은 지난해 9월 엔지니어링업체가 서울 외곽으로 이주하는 바람에 5950m²(1800평)가 6개월째 빈 공간으로 방치돼 있다. 강남구 역삼동 H빌딩도 지난해 8월 건축설계사무소 등 3개 회사가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6612m²(2000평)가 6개월간 공실 상태다.
○ 테헤란로마저도 임대료 연체
강남권의 핵심인 테헤란로는 지난해 공실률이 제로에 가까웠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공실률이 급등하고 있다. 테헤란로에 접해 있는 연면적 1만 m² 이상 대형빌딩들의 현재 공실률은 5.8%로 서울 평균의 2.8배 수준이다. 연면적이 1만4000m²인 S빌딩은 빈 사무실 비율이 19%나 됐다.
테헤란로에는 개인사업자보다는 법인사업자들이 많아 월 2000만∼3000만 원 정도의 월세를 연체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게 이곳 부동산업계의 전언. 하지만 경기가 급속히 꺾인 지난해 4분기부터는 두세 달씩 임대료를 내지 못하는 기업들이 부쩍 늘었다.
심지어 영세한 소규모 시행사와 기획부동산업체 등은 부도를 낸 뒤 임대료 수개월 치가 밀린 상태로 대표이사가 잠적하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
정성진 포시즌씨앤에셋 사장은 “임대료 연체가 한두 달만 더 지속되면 건물주와 세입자 간에 명도소송도 빈번히 일어날 조짐”이라며 “경기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사무실 임대 수요가 줄어들고 있어 공실률 증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