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유권자들 내세워 설득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현 상태로는 어려울 듯.’
지난해 말 한국무역협회 미국 워싱턴·뉴욕지부에서 작성한 내부 보고서의 제목입니다. 요점은 미국과의 FTA 비준을 앞두고 있는 콜롬비아 및 파나마와, 한국의 처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미-콜롬비아 FTA의 경우 비준에 반대하는 미 의원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뉩니다. 한 그룹은 모든 FTA에 반대하는 ‘전면 반대파’이고, 다른 한 그룹은 상대국 노동인권 현실만 문제 삼는 ‘부분적 반대파’라고 합니다.
콜롬비아로서는 이 ‘부분적 반대파’ 그룹만 설득해도 비준이 어렵지 않은, 편한 처지입니다.
한국은 다릅니다. 자동차 등 현안이 걸려 있는 한 한미 FTA 비준은 어렵다고 이 보고서는 주장합니다. 이 보고서는 그 근거 중 하나로 이번 제111대 미 의회를 이전 의회와 비교해 보면 보호무역 성향의 상원의원이 5명, 하원의원이 27명 더 늘어났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심상찮은 기류 때문에 무역협회는 지난해부터 미 현지 통상무역 전문 로펌으로부터 한미 FTA 문제 관련 정보 분석자료를 정기적으로 전달받고 있습니다. 무역협회는 이 자료를 외교통상부와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이뤄지는 한미 FTA 논의를 보면 비싼 돈을 들여 사오는 정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한미 FTA 비준 등과 관련해 미 의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찰스 랭걸 미 하원 세입위원장이 한 ‘조언’을 한 번 볼까요.
랭걸 위원장은 로비스트를 동원해 주요 의원 한두 명 정도를 포섭하는 방식은 통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고 이 보고서는 전합니다. 외국인(한국) 입장에서 직접 미 의회를 접촉하기보다는 토박이 미국인을 ‘풀뿌리 로비’ 차원에서 교육시켜 대리인(surrogates)으로 내세우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유권자인 그들의 입을 통해 한미 FTA가 가져올 긍정적 효과를 미 의원들에게 ‘재전송(re-cast)’해야 한다는 것이죠.
랭걸 위원장은 또 “문제가 되는 자동자 관련 조항의 실체에 대해서도 이들 미국인의 입을 통해 의원들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상대국의 정치적 지형을 제대로 읽어내는 냉철함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김정안 산업부 기자 cred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