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도 공장처럼” 기업형 농가, 글로벌 경쟁력 열매 딴다

  • 입력 2009년 2월 7일 03시 01분


최근 국내 농가 가운데 비즈니스 모델을 창의적으로 적용해 성공하는 ‘기업형 농가’가 늘고 있다. 이들 농가는 좁은 내수시장에서 벗어나 빠른 속도로 해외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등 농업이 ‘수출 효자’로 탈바꿈할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농가들의 비결을 들어봤다.

경기 화성시 문호동 ‘아이프롤(iflor) 화훼공장’.

이곳은 카네이션, 비비추 등 각종 꽃과 풀이 재배되는 ‘농장’이다. 하지만 박조한(42) 아이프롤 대표는 이곳을 ‘농장’이 아닌 ‘공장’이라고 부른다.

“화훼산업은 단순재배 중심으로 운영하면 중국산 꽃과 대기업에 밀려나기 십상입니다. 농장도 공장처럼 과감하게 기업의 경영방식을 받아들여야 생산성도 경쟁력도 올라가죠.”

9900m²(약 3000평) 규모의 농장 내 14개 비닐하우스 안에는 10만 본의 푸릇한 카네이션과 5만 본의 비비추가 가득 차 있었다. 4월 말 출하될 아이프롤의 작품이다.

이 농가의 연평균 매출은 약 3억 원.

박 대표를 중소기업 사장으로 만들어 준 ‘기업형 경영방식’이란 무엇일까.

○ 기업형 자금관리

아이프롤의 성공 비결 키워드는 철저한 자금관리다.

박 대표는 “비록 농가지만 기업형 농가로 크기 위해 회계 프로그램을 도입한 뒤 지출액을 명확히 파악하고 다음 해 사업을 더 현실적으로 구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보통 농가들은 회계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편이다. 농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가족과 떼려야 뗄 수 없어 ‘자기 인건비’ 등 회계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

‘농업 경영인’임을 자칭하는 박 대표는 아이프롤을 델몬트, 선키스트 같은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인근 지역 여러 농가가 함께 만든 브랜드인 ‘한우예찬’도 기업형 자금관리를 통해 성공한 사례다.

한우예찬은 농가와 투자자가 상생할 수 있는 ‘한우예찬 펀드’를 만들어 금융권 2곳에서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 이 브랜드는 한우를 기르지 못하는 농가에 암송아지 2750마리를 무료로 위탁해 기르도록 한다.

그 후 3년 안에 해당 송아지를 사들여 고기소를 키우는 비육우 농가에 파는 식이다. 김태종 대표는 “각 농가의 모든 송아지는 표준화된 방식을 따라 사육해 양질의 한우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 브랜드 차별화

버섯 농가 ‘청아테크’는 경쟁업체와 달리 일찍이 ‘맛타리’ 브랜드로 버섯의 브랜드화 바람을 선도했다.

브랜드로 상표등록된 버섯이 흔치 않았던 2000년대 초 청아테크는 맛타리로 ‘명품 느타리버섯’ 이미지를 키웠다. 보통 6송이씩 포장하는 기존 버섯 상품과 달리 명품화를 위해 1송이씩 정성들여 포장하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이제 청아테크는 항암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잎새버섯’을 브랜드화해 시장 흐름을 주도할 계획이다.

임광혁 청아테크 대표는 “잎새버섯의 모양을 연상하게 하는 ‘사슴뿔버섯’이란 상표등록을 마쳐 잎새버섯 대중화를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돼지고기 브랜드 ‘인삼 포크 진생원’도 ‘인삼’을 내세운 브랜드로 소비자의 이목을 끌었다. 인삼 찌꺼기로 만든 사료를 먹여서 ‘인삼 포크’다. 이 브랜드는 다른 돼지고기와 다르게 2∼3개월 인삼 사료로 길러 고기 맛이 다르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진생원은 12개 농가가 힘을 합한 영농조합 형태로 운영돼 브랜드 가치를 더 튼튼하게 지킬 수 있었다.

양석준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 농가가 브랜드를 강화하려면 단순히 겉포장이 아니라 종합적인 마케팅 플랜에 신경을 써야 한다”며 “지역 중심의 브랜드를 품목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 유통방법의 혁신

경북 영천시에서 재배한 블루베리는 가까운 일본뿐 아니라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지로의 수출이 추진되고 있다.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한 전자상거래 덕분이었다.

‘스몰킹(Small King) 블루베리’ 농가의 진우권 대표는 “전자상거래로 유통을 시도했기 때문에 우리같이 농촌 구석에 있는 농가도 이렇게 전국적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스몰킹 블루베리는 판매를 시작하기 1년 전부터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잠재고객과의 스킨십을 넓혀 나갔다. 그 결과 2007년 고객 가운데 다음 해 재구매한 고객 비율이 전체의 97%에 달했다.

진 대표는 “올해는 엔고로 수출 전망이 좋아 벌써부터 일본 바이어들이 생산되는 모든 물량을 가져가겠다고 벼르고 있을 정도”라며 뿌듯해했다.

전자상거래를 통해 또 다른 유통 경로를 개척한 농가도 있다.

2006년 인터넷 판매를 시작한 방울토마토 농가 ‘오뚜기농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농장 소개를 본 대형 슈퍼마켓의 ‘러브콜’을 받았다.

올해는 학교 급식 관리업체의 주문도 받아 급식 시장에 새롭게 진출했다.

도재호 오뚜기농장 대표는 “인터넷 직거래는 공판장 판매와 달리 유통비용을 줄여 고정된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어 농가 소득에 큰 보탬이 된다”고 전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 농수산식품 ‘수출 효자’ ▼

작년 44억달러… 참치 - 오징어 - 김치 등 인기

농식품과 수산식품이 ‘수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한국의 수출 시장이 전반적으로 얼어붙었지만 농림수산식품 수출만큼은 올해도 큰 폭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됐다.

6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농림수산식품 수출액은 약 47억 달러로 지난해(44억280만 달러)에 비해 7% 늘어날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농식품부가 농식품 수출업체를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된 금액이다. 이를 바탕으로 농식품부는 한 걸음 더 나가 수출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무려 20%나 늘어난 53억 달러로 잡고 있다.

올해 국내 총수출이 1% 증가할 것이라는 지식경제부의 조사를 감안하면 농림수산식품 수출은 세계 경기 침체를 비켜가는 모습이다. 지난해에도 농림수산식품 수출은 17.1% 증가, 총수출 증가율(13.7%)을 앞질렀다.

특히 농식품류 수출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농산물, 축산물, 임산물로 이뤄진 농식품 수출액(29억5450억 원)은 수산식품(14억4830억 달러)보다 2배 이상으로 많았다.

품목별로는 2억9320만 달러어치를 수출한 참치가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오징어(1억2070만 달러), 인삼(9720만 달러), 김치(8530만 달러), 김(7530만 달러) 등의 순이었다.

국가 및 지역별로는 일본에 대한 수출이 14억3770만 달러로 가장 컸고, 중국(5억3660만 달러) 아세안(4억4460만 달러) 미국(4억4280만 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농식품 수출에서 한국의 최대 강점은 ‘인접한 거대 소비시장’이다. 특히 신선식품은 빠른 배송이 생명인데 한국 기준으로 반경 2000km 안에 중국과 일본이라는 거대 시장이 있다. 반경 내 시장 규모는 7400억 달러, 인구는 약 15억 명이다.

게다가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는 국가가 점차 늘고 있고 식문화가 세계화되고 있는 추세도 기회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올해 53억 달러, 2012년에 100억 달러 수출을 이루겠다는 목표다.

100억 달러 수출은 현대자동차의 소나타 승용차를 약 39만 대 수출한 것과 맞먹는 액수라고 농식품부는 분석했다. 고용유발효과도 5만6000여 명 수준이다.

물론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농식품의 수출 기업들의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경영선진화 및 해외시장의 적극적 확대 등에서 불리하다. 실제 국내 농식품 수출기업은 약 3900개로 각각 연평균 150만 달러어치 정도를 수출한다.

대표 선수의 부재도 아쉬운 대목이다. 프랑스는 와인 수출로 2006년 약 11조 원을 벌어들였지만 한국은 지난해 김치 수출로 약 1177억 원 버는 것에 그쳤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태영(27·서울대 언론정보학과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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