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피해 돈 빼돌리기 속출… 법원, 감사 강화 나서
1999년 설립된 가구 생산업체인 P사는 고급 맞춤가구의 틈새시장을 공략해 국내외 주요 호텔에 납품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2003년에는 중국에 공장을 세웠고 2006년 칭다오(靑島) 자오저우(膠州) 시 주관 10대 외자기업에도 선정됐다.
그러나 위안화가 급등하고 은행들의 대출까지 줄어 연간 100억 원이 넘던 매출이 지난해 40억 원대로 뚝 떨어졌다. P사는 결국 지난해 11월 법원에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고 12월 법정관리가 시작됐다.
P업체 관계자는 “담당 판사가 너무 바빠 현장 검증을 못한 데다 회사 세부사항도 잘 모르는 상태라 충분히 상의할 기회가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
파산부의 한 판사는 “법원 대신 회계법인(조사위원)이 현장 실사를 하기도 한다. 회생 사건이 급증해 매일 야근하지만 업체들의 세세한 요청까지 다 들어주긴 힘들다”고 밝혔다.
○ 경제 위기로 법정관리 기업 급증
8일 대법원에 따르면 법정관리 신청은 2007년 116건이었으나 지난해는 366건으로 세 배 이상 급증했다.
국내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경우 2008년 신청건수가 110건으로 2007년(29건)의 3.8배에 이르렀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판사는 18명. 이 가운데 ‘개인’이 아닌 ‘법인’의 파산 및 회생만 담당하는 판사는 14명이다. 판사 1명당 지난해 7.8개의 기업을 맡은 셈이다.
지난해 신청건수 중 41건은 회생가치가 적거나 회생 계획대로 운영이 안 돼 신청이 기각 또는 취하됐다.
1월 15일 현재 서울중앙지법이 맡고 있는 법정관리 신청 기업은 모두 98개로 집계됐다. 이 중 24건은 법정관리를 시작할지 검토 단계에 있고 나머지 74건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판사들은 기업들을 일일이 관리하기 힘들어 재무 및 회계 전문가인 관리위원을 선임해 도움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관리위원은 모두 5명으로, 이들의 업무 부담 또한 만만치 않다.
그나마 서울중앙지법은 사정이 나은 편. 지방 법원은 2000년대 들어서 본원에 파산부를 신설하고 있지만 대부분 민사 신청 사건을 겸해 맡고 있는 실정이다.
○ 부실관리로 비리 기업 생겨날 우려
법원이 법정관리 전담 재판부를 만든 것은 외환위기 이후인 1999년. 법정관리 기업이 급증하자 서울중앙지법에 파산부를 처음 신설했다.
그러나 법정관리 기업의 비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법원의 감시를 피해 돈을 빼돌리거나 납품업체 등에서 돈을 받은 임원이 속출한 것. 결국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서 2000년 5월 나산과 광명전기 등 5개 법정관리 업체의 법정관리인 등 11명을 적발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올해 파산부 판사를 확충하고 기업의 감사 활동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법정관리인이 비리를 저지르면 감사를 먼저 문책하고 △감사가 회사의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며 △감사 선임시기를 앞당겨 기업을 조기에 감독할 계획이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