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시 불과… 구조조정이 살길”
‘재도약의 신호인가, 위기의 시작인가.’
현대·기아자동차가 지난달 미국 시장에서 주요 자동차 기업 중 유일하게 판매가 증가하면서 자동차 업계에선 해석이 분분하다.
일부에선 벌써부터 “소형차 비중이 높은 현대차가 가장 먼저 바닥을 탈출해 재도약하는 것 아니냐”는 희망 섞인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현대·기아차의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영석 한남대 경영학과 교수는 10일 “1월 실적만 갖고 판단하긴 이르지만 현대차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지난 10년간의 흑자로 4조∼5조 원의 유동자금을 갖고 있다는 것도 이번 위기가 현대·기아차엔 다시 한 번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현대차가 외환위기 직후 한 차례 ‘모험’을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경험과 소형차 비중이 경쟁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 등을 경쟁기업에 비해 강점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가 처한 환경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지난달 현대차의 실적이 돋보인 미국 시장의 자동차 판매량은 연간 기준으로 환산할 때 1000만 대 선이 깨졌다. 1982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현대차는 지난달 미국 시장에서의 실적이 지난해 1월에 비해 14.5%나 증가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이는 ‘착시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올해 1월 실적과 비교 대상이었던 지난해 1월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2만1452대를 팔아 2007년(2만7721대)에 비해 22.6%나 감소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현대차가 지난해 1월 미국에서의 실적이 워낙 좋지 않았다”며 “지난달 실적을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올해 미국 시장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소형차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강점도 1월 실적만 놓고 보면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일본, 유럽, 미국 등의 경쟁기업들이 발 빠르게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 것도 현대차엔 중장기적으로 심각한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항구 팀장은 “군살을 뺀 유럽, 일본, 미국 기업들이 경기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 본격적인 반격을 시작할 것”이라며 “노조, 주주, 정부 등의 눈치를 살피느라 제때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대차는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