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업보상 4개월치 지원
임대인 권리금 반환의무
대법 예외적으로만 인정
재개발 뒤 조합원에게 분양하고 남은 상가를 재개발 전 상가 세입자에게 우선 분양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재개발을 할 때는 세입자 등을 위한 임대주택을 먼저 확보한 뒤 사업에 들어가도록 했다.
정부는 10일 용산 철거민 참사를 계기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재개발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재개발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나선 것이 의미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서울에 임대주택을 지을 만한 땅이 별로 없는 점 등을 들어 실효성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 재개발 보상 및 투명성 강화
상가 세입자를 지원하기 위해 현행 3개월인 휴업지원보상금 지급 기준이 4개월로 늘어난다. 또 주거 세입자가 이주할 단지를 확보한 뒤 사업에 착수하는 순환개발방식으로 재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순환개발방식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 경기 성남시 등을 재개발할 때 도입한 적이 있다.
건물주가 세입자 보상금을 일부 부담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건물주가 이주비를 받기 위해 친인척을 위장 전입시키는 사례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조합이 이주비를 일괄 부담함으로써 세입자가 있는 건물주와 없는 건물주 간에 제기되던 형평성 논란이 그치게 됐다.
재개발사업 관련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시군구에 관련 분야 전문가와 시민단체 대표 등이 참여하는 분쟁조정위원회도 설치한다.
재개발조합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장이 조합에 대한 회계감사기관을 선정하기로 했다. 감정평가사도 지자체장이 선정하고 계약도 직접 하도록 했다.
하지만 논란의 핵심이 됐던 권리금에 대한 개선방안은 빠졌다. 정부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권리금을 인정하는 사례가 없고 권리금은 건물주가 아니라 세입자끼리 주고받는 것이어서 사실상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법원도 일반적으로 건물주인 임대인의 권리금 반환 의무를 인정하지 않는다. 권리금은 임차인끼리 주고받는 ‘자릿세’ 성격의 돈이어서 건물이 헐리거나 하는 사정이 생겨도 임대인이 권리금을 내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세입자가 건물주를 상대로 낸 전세보증금 반환청구 소송에 대한 2002년 7월 판례에서 “권리금은 영업시설이나 비품, 신용이나 영업상의 노하우 등 무형의 가치를 양도하거나 일정 기간 이용하는 대가”라며 권리금이 임대차 계약을 이루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권리금을 받고 일정기간 이상 임대차 계약을 유지하기로 한 약속을 임대인이 자신의 사정으로 중도해지했다면 권리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은 “이달 안에 법령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작업을 서두르고 시행규칙 등 하위 법령은 그 이전이라도 먼저 고치겠다”고 밝혔다.
○ “일부라도 공공사업으로 전환해야”
전문가들은 세입자에 대한 보상 기준을 강화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임대주택 용지 부족과 세입자의 낮은 경제력 등 재개발사업이 지닌 복잡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주거환경연구원 김태섭 연구실장은 “조합원에게 분양하고 남은 상가를 상가 세입자에게 우선 분양한다 하더라도 분양권을 살 만한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세입자가 많다”며 “분양권 가격을 낮추면 조합원들의 이익이 줄어들어 조율하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건물주에게 세입자의 보상금 일부를 부담하게 하면 재개발 추진력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 정책실장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해 이익이 많이 나면 건물주가 일정액을 세입자에게 보상해 줄 수 있겠지만 부동산시장이 침체돼 재개발 이익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건물주가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되면 재개발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재개발은 조합원의 이익 실현 외에도 쾌적한 도시환경을 만든다는 점에서 공적인 성격이 강하므로 일정 부분 공공사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