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보다 실속! 2년제 전문학교의 힘

  • 입력 2009년 2월 11일 20시 40분


#1. 13일 서울호서전문학교를 졸업하는 류현민(31) 씨.

그는 최근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한 정보기술(IT) 회사 취업에 성공했다.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자존심을 과감하게 버리고 곧바로 호서전문학교에 입학했다. 하루 일본어를 5시간, 정보기술(IT) 분야를 3시간씩 강도 높게 공부했다. 컴퓨터의 기본 구조부터 프로그래밍의 기초인 C언어, 고급언어인 닷넷까지 단계별로 배웠다.

취업할 때에도 학교 측에서 일본 IT업체를 직접 섭외해서 회사를 직접 섭외하는 등 적극적으로 알선해줬다. 류 씨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으로 무턱대고 원서를 넣는 것과 달리 학교에서 골라준 기업만 면접을 봐서 비교적 쉽게 해외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 최근 인천공항 면세구역에서 비즈니스클래스 환승객이 이용하는 공항라운지에 취업한 조영귀(25) 씨는 공업고 출신이다. 그 역시 이달 호서전문학교를 졸업한다.

조 씨는 항공사 최종 면접에서 2명을 선발하는데 경쟁자가 20명으로 10대 1이었고 4년제 대학 졸업자도 많아서 주눅이 들었지만 면접에서 항공사에 근무했던 교수에게 배운 발권 업무 등 실전지식 등을 높이 평가 받아 취업문을 뚫을 수 있었다.

사상 유례 없는 취업 대란 속에서도 졸업생 대부분이 취업에 성공한 학교가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자리한 호서전문학교. 이 학교는 고졸 이상이면 지원할 수 있고 2년을 다니면 전문대 졸업자와 같은 자격을 얻는 노동부 인가 교육기관이다.

호서전문학교의 올해 2월 졸업예정자 취업률은 11일 현재 91.6%. 취업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학교 측은 이달 내로 취업률이 100%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호서전문학교의 취업률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9년 연속 100%였고 올해도 이를 달성하면 10년 연속 취업률이 100%가 된다.

이운희 호서전문학교 학장은 "학생들이 취업할 수 있는 기업으로 눈높이를 맞추고 실무 능력을 비중 있게 평가하는 기업들을 적극 공략해 취업률을 높이고 있다"며 "오리엔테이션조차 필요 없이 실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학교는 교수진 80여명은 실무 경력이 5년 미만이면 아예 채용하지 않는다. 일본 도쿄에서 미용실을 운영했던 김지연 교수(미용예술과), 그랜드힐튼호텔 지배인 출신의 이상철 교수(호텔외식경영과) 등 전문가급의 교수가 수두룩하다. 취업 정보실 직원뿐만 아니라 교수까지도 인맥을 총동원해 발로 뛰면서 졸업생들을 위해 지원 사격에 나선다.

또 졸업 예정자들은 3~4명이 팀을 꾸려 작품을 만든다. 정보처리과 학생은 출판사를 다니면서 수요조사를 한 뒤 재고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식이다. 논문이 아닌 작품으로 승부하는 셈이다.

학교도 산업체 수요 조사를 해서 매년 신규 학과를 개설한다. 방송가에서 코디네이터 등이 인기를 끌자 방송연예스타일과를 개설했고, 시중에 피부관리실이 급증하면서 피부 관리 수요가 급증하는 것을 파악해 피부관리과도 만들었다.

이렇다 보니 명문대나 유학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다. 최근 메리어트호텔에 취업해 여성 호텔리어가 된 송혜민(24·관광경영과) 씨는 호주 멜버른대 심리학과를 다니다가 호서전문학교를 입학했다.

송 씨는 "호텔 프런트데스크와 바 등 호텔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실습실에서 고객 응대 연습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올해 졸업생 이지훈(24·애완동물과) 씨는 서울대 삼성암연구소 연구원이 됐다. 이 씨는 당뇨 연구를 위해 돼지 내장을 실험용 쥐에 이식해 면역력을 살펴보는 등 실험동물을 관리하면서 면역력 등을 살피는 업무를 맡았다. 그는 4년제 대학 컴퓨터공학과를 다니다가 동물에 관심이 많아 이 학교에 입학했다.

전문가들은 전문학교를 잘 키워야 청년 실업률을 낮추고 기업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독일의 '호흐슐레', 영국 '센트럴스쿨', 호주 '테이프'(TAFE) 등으로 대표되는 선진국의 전문학교는 규모나 숫자면에서 크게 활성화돼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전문학교(학점은행제 실시)는 58곳이며 이 중 학생 수가 1000명 이상인 전문학교는 10곳 정도에 불과하다.

권구민 평생교육진흥원 전문원은 "전문학교가 보편화된 외국과 달리 한국의 전문학교는 대부분 영세한 수준"이라며 "전문학교가 활성화되려면 학벌을 중시해 무턱대고 대학에 진학하는 풍토도 함께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영기자 abc@donga.com

박재명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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