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대규모 경기부양법안이 곧 시행된다. 미 의회는 13일 7870억 달러 규모 경기부양법안을 통과시켰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7일 이 법안에 서명할 예정이다. 향후 2년간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5%씩 쏟아 부을 이 부양책의 성패에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의 운명이 상당 부분 달려 있다. 부양책의 구체적 내용,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짚어본다.》
개인당 400달러 세금 감면
교육-복지-SOC 재정 지출
부실기업 간부 보너스 규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경기부양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뒤 "경제회복의 길로 가는 중요한 이정표"라며 "우리는 경제를 선회시킬 길고 지난(至難)한 과정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대책은 소비자와 기업이 돈을 쓰게 만들려는 시도이며 지속적인 성장의 동력을 얻기 위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지난주부터 연일 민생경제 투어를 하고 있는 그는 17일 콜로라도 주 덴버에서 법안 서명식을 갖는다. 16일은 미국의 법정공휴일이다.
부양책 성공의 핵심이 소비자와 기업의 '자신감 회복'에 달려 있는 만큼 국민들의 기대와 신뢰를 높이기 위한 강도 높은 홍보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는 법안 서명 직후 주택압류 대책을 발표하며, 금융기구 감독강화 방안 등 부양책을 도울 다양한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말기에 통과돼 시행되고 있는 7000억 달러 규모 금융구제안의 효율성을 높일 방안도 강구한다.
이번 부양책은 하원에서 찬성 246표 대 반대 183표로 통과됐다. 공화당 의원은 전원 반대표를 던졌고 민주당 7명도 반대에 합류했다. 이어 상원에선 찬성 60 대 반대 38표로 통과됐다. 공화당 3명이 찬성해준 덕분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바랐던 초당적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의회 논의가 시작된 지 한달 여 만에 법안이 통과됐다. 수개월 이상 시간을 끄는 대형법안이 숱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초고속 입법이 이뤄진 것이다.
이번 부양책은 오바마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취임 전 시사했던 것보다 규모가 줄었다. 하지만 루스벨트 뉴딜정책 절정기에도 국민총생산(GDP)의 1.5% 이상은 지출을 늘리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2년간 매년 GDP 대비 2.5%를 지출할 이번 부양책은 '초대형'이라는 게 월스트리트 저널이 전한 백악관 측의 설명이다.
구체적 내용을 보면 7870억 달러 가운데 대략 3분의 1은 기업과 개인에 대한 감세다.
근로자 1인당 400달러, 맞벌이 부부는 800달러의 세금공제를 받게 된다. 대학학비 세금 공제도 확대되며, 자동차 구입에 대한 세제지원도 이뤄진다. 첫 주택구입자에 대한 인센티브도 제공된다.
부양책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정부 지출은 △지방정부의 교육·빈민 복지 관련 예산이 줄지 않도록 각 주 정부 지원 △과학기술 연구지원 △그린테크놀로지 지원 △도로건설 등 인프라 투자 등으로 이뤄진다. 구조조정 해고자들에 대한 건강보험료 지원도 이뤄진다. 특히 외국 기업과의 경쟁 때문에 실직한 근로자에 대한 지원이 확대된다.
더불어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실업수당을 확대하고 은퇴자에겐 250달러를 지급한다.
재무부의 부실자산구제계획(TARP) 자금을 받는 대기업 간부의 보너스를 규제하는 내용도 담겼다. 논란이 돼온 '바이 아메리칸' 조항은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조건으로 시행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양책이 소비 및 투자심리를 촉진하는 '심리적 점프 스타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얼어붙은 소비 심리가 되살아나고 약속대로 35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효율적 집행 어려워 세금 낭비” 우려도 ▼
경기 부양책에 대한 비판론은 이번 대책이 일자리 창출 대신 재정낭비와 빚잔치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에 기반하고 있다.
공화당은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 지출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며 "일부 기업과 이익집단의 잇속을 챙겨주면서 혈세만 낭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7870억 달러 가운데 24%가 각 부처에 할당돼 에너지 효율화, 인프라 건설 등에 투입될 예정이지만, 정작 이를 집행할 부처의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보수파 주간지인 위클리스탠더드는 "책정된 예산 가운데 30%는 2011년 이전엔 집행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를들어 농촌지역 광대역 통신망 확충에 배정된 70억 달러는 상무부 인력 부족으로 집행에 8년가량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린프로젝트를 목표로 400억 달러를 배정받은 에너지부의 경우 이미 2005년 같은 목적으로 받은 예산도 아직 다 못쓰고 있는 형편이다.
뉴스위크는 소비자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우려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세금 감면이 소비 시장이나 경기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4분기 미국의 저축률이 2.8%로 치솟은 데서 볼 수 있듯 대다수 소비자가 감세로 생기는 돈을 빚을 갚거나 비상금으로 저축해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