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시장 ‘돈맥경화’… 당분간 고공행진 예상
‘기러기 아빠’인 은행원 이모 씨(46)는 17일 컴퓨터 모니터로 환율의 움직임을 보다 긴 한숨을 내쉬었다. 미국에 유학 중인 아들의 집세와 생활비로 매달 2000달러를 보내던 이 씨는 환율이 조만간 하락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을 믿고 송금 시기를 미뤄 왔다. 하지만 최근 환율이 예상과 달리 연일 치솟자 미리 송금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한 달 전만 해도 많은 전문가는 올해 원-달러 환율을 ‘상고하저’의 흐름으로 예상하면서 평균 환율을 ‘상반기 1300원대, 하반기 1100원대’로 봤다. 국제 금융시장이 점차 안정을 되찾고 한국의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원화 약세(환율 상승) 압력이 완화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 전망은 국내외 악재가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다시 비관론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 국내외 악재에 포위당한 환율
외환시장 불안의 근본 원인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전례 없는 유동성 공급으로 경제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지 않을까 했던 기대가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진우 NH선물 부장은 “세계 각국이 유동성을 쏟아 붓고 각종 경기부양 정책을 내놓으면서 시장에서는 자금시장에도 봄이 오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기대가 많았다”며 “하지만 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는 신용경색은 해소되지 않았고 ‘이번에는 어디가 터질까’ 하는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은행들은 여전히 해외로부터의 달러 차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우리은행이 4억 달러 규모의 10년 만기 후순위채에 대한 콜옵션(조기상환 요구)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후순위채는 10년 만기로 발행하더라도 5년이 지나면 발행 금융회사가 콜옵션을 행사해 조기상환하는 것이 관례. 하지만 신규 달러자금을 해외에서 조달하려면 15%에 이르는 고금리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은행이 조기상환을 포기한 것.
금융 당국은 “해외 금융회사들도 후순위채 콜옵션 행사를 포기한 사례가 있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지만 일부 해외 투자자는 한국의 달러 부족에 대한 우려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실제 우리은행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3일 5.80%로 지난달 말의 4.50%에 비해 1.30%포인트나 급등했다. CDS 프리미엄은 금융회사의 파산위험에 대한 보험료 성격으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신용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 정부 개입 효과 미지수
전문가들은 당분간 환율이 ‘고공행진’을 계속할 것으로 전망을 수정하고 있다.
국내외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고 신용경색이 풀려야 외환시장도 안정될 수 있는데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
단기적으로는 ‘윤증현 경제팀’의 외환시장 개입 강도와 효과가 환율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강지영 외환은행 연구원은 “작년에는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하고도 시장에 끌려 다니면서 별 효과를 못 봤는데 새 경제팀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개입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