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병철]FTA 비준해 ‘바이 아메리칸’ 넘자

  • 입력 2009년 2월 20일 02시 56분


우리의 수출 영토를 넓히겠다며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의욕적으로 시작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새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나도록 국회 비준을 받지 못했다. 사정이 이러니 사회 일각에 한미 FTA 비준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미국의 비준이 늦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가 먼저 서둘러 비준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렇다 할 부존자원이 없는 가운데 맨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우리에게 무역이, 그리고 미국이라는 수출시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 왔는지를 간과한 얘기다. 전쟁의 폐허에서 한강의 기적을 싹트게 한 것은 하면 된다는 정신과 함께 미국이라는 거대한 수출시장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협정이다. 전문가들은 한미 FTA가 발효되면 상호시장 확대 및 교역장벽 제거에 따른 수출 증가 효과로 우리의 대미수출은 35억 달러에서 46억 달러 정도,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수출은 17억 달러에서 30억 달러가량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기업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계속 하락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한미 FTA 비준은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 또 최근 ‘바이 아메리칸’ 조항 등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 확산 경향의 타개책이 될 수 있다. 경제적 이익 외에도 한미 FTA는 한미 간의 역사적인 동맹관계와 정치외교 분야에서의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양국의 공조를 더욱 공고하게 하여 우리나라의 대외 신인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사회 일각에서 주장하듯이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시각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최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발언은 일부 언론의 지적과는 달리 재협상을 일방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우리 정부가 협상에 재관여(reengage negotiation)할 뜻이 있는 경우 협상을 하겠다는 얘기일 뿐이다. 양국이 FTA 비준 필요성에 대해 여러 차례 확인했으므로 미국 정치인 발언의 단어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현실적으로 문제 되는 자동차 분야도 협정문의 수정보다는 기술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 사안이다.

미국의 비준은 신정부 출범 후 통상정책에 대한 대내적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고 경기부양책에 신정부의 시선이 집중돼 다소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사정이 그럴수록 우리가 국회에 계류 중인 한미 FTA 비준안을 이른 시일 안에 통과시키는 길이 미 의회를 설득하여 미국의 조속한 비준을 얻어내고 국익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 시장이 우리 시장보다 훨씬 크고 우리 기업의 기대이익 역시 커 비준이 지연될 경우 우리에게 더 큰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먼저 비준해도 발효 전 보완대책을 시행할 수 있고 미국은 의회 심의가 비교적 신속히 진행될 수 있으므로 우리가 먼저 비준해야 비슷한 시점에 양국에서 FTA가 발효될 수 있다. 따라서 한미 FTA를 먼저 비준한 뒤 보완대책을 시행해 가면서 필요할 때 추가대책을 논의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콜롬비아와 파나마의 경우 해당국이 먼저 자국 내 비준을 마치고 정부와 산업계가 미국 의회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FTA 인준 노력을 기울인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미 FTA는 우리나라의 번영을 위한 선택조건이 아니라 필수조건이다. 심각한 현 상황을 감안할 때, 더구나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수출이 올 들어 급감하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이제 왜곡된 시각과 오해를 접고 한미 FTA 비준이라는 국가 번영을 위한 큰 걸음을 힘껏 내디뎌야 한다.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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