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농수산물의 소비자가격에서 유통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가을배추의 경우 최대 76.4%였다. 농산물의 시중 가격이 1000원이면 유통비용으로 764원이 들었다는 뜻이다. 본보가 단독 입수한 자료로 농림수산식품부가 곧 공개할 ‘25개 품목 농수산물의 생산·유통구조 개선대책’과 농수산물유통공사(aT)의 ‘2008년 주요 농수산물의 유통비 비율’에 따르면 가을배추 등 배추류의 유통비 비율은 70%대 안팎이었다. 또한 배 단감 포도 감귤 등 과일류가 대부분 50%를 훌쩍 넘었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주요 축산물은 40%를 넘었다. 농산물이 농민의 손을 떠나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까지 이처럼 많은 비용이 드는 원인은 무엇일까.》
도소매상 거칠때마다 이윤 - 운송 - 포장료 추가
가을배추값 76%가 유통비… 축산물 40% 넘어
17일 오후 10시 반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 화훼 공판장.
4300m²(약 1300평)에 이르는 공판장 안을 달콤한 꽃향기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바닥에는 백합, 장미, 카네이션, 안개꽃 등의 꽃들이 수북이 담긴 상자 3500개가 빼곡히 쌓여 있었다.
밤 12시가 가까워지자 30명 정도이던 중도매인이 순식간에 120여 명으로 늘었다.
18일 0시. 경매 시작 벨이 울리고 대형 전광판에 ‘꽃 출하주(出荷主) 이름’, ‘꽃의 등급’, ‘지역’ 등을 나타내는 글자가 표시됐다. 중도매인들은 야구장 관람석 같은 경매장에 앉아 경매 버튼을 바쁘게 누르기 시작했다.
경매는 새벽 3시가 지나도록 계속됐다.
○ 복잡한 유통 단계가 만든 ‘유통비 거품’
경매 직후 중도매인들은 구매한 꽃을 공판장 옆 중도매인 점포로 옮겼다. 이곳을 찾는 전국의 꽃 도매상과 소매상 상인들의 발길은 점심 때까지 이어졌다.
충남 태안군에서 출하된 백합이 이곳을 거쳐 소비자의 손에 들어갈 때 어느 정도의 유통비가 붙어 있을까.
전체 가격의 56% 정도라는 게 농식품부의 조사 결과다. 백합 판매 가격이 1000원이라면 유통비가 560원인 셈이다.
각 단계를 추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태안의 농가에서 출하된 백합 한 묶음(대개 5송이)의 가치는 4689원가량이다. 백합이 화훼공판장에 도착하는 데 드는 포장비와 운송비는 약 147.3원. 여기에 상장 수수료와 경락 가격이 더해지면 백합 가격은 5200원이 된다.
이 가격에 백합을 산 중도매인은 이윤 486.7원을 남기고 배송료 등을 들여 6500원에 소매인에게 판다. 소매인은 713.3원의 이윤을 갖고 운송비 등을 들여 결국 1만500원에 백합을 판매한다.
신선함이 어느 상품보다 중요한 화훼류의 특성상 유통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현행 유통비는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김대경 농식품부 주무관은 “복잡한 유통 단계를 단순화시켜야 할 필요성이 크다”면서 “농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직거래’ 활성화는 물론 공판장에서 경매 시간을 단축하는 ‘샘플 경매’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 현장에서 보는 유통 구조의 심각성
화훼 수출입 법인 제주플라워의 진광남 대표는 “농협 외에 정부가 경영하는 대형 공판장이 한 곳뿐이니 생산을 해도 팔아낼 유통망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공판장으로 보내고 남는 꽃을 좌판이나 민간 공판장에 맡기면 폭리가 심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원산지 제도가 허술한 유통 구조도 문제였다. 전남 여수시의 윤채동 씨(56)는 “원산지가 표시되지 않은 꽃이 많이 유통된다”며 “중국산 등이 국산처럼 팔리면 결국 우리 농가들이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재활용 농산물의 유통도 문제였다. 한국 시장의 특성상 가정용 꽃보다 행사용 꽃이 많은데 재활용 꽃이 행사용으로 많이 유통된다는 것이다. 신상품과 구분 없이 유통되면 신선한 꽃은 제값을 못 받는다는 설명이다.
화훼는 대표적인 수출 유망 품목 중 하나이지만 유통시설 자체는 후진적이었다.
권영규 aT 경매실장은 “선진국에 보편화된 ‘습식 유통’ 비율은 전체의 2%정도밖에 안 돼 대부분 건조한 상태로 유통된다”며 “싱싱하게 해외 소비자에게까지 전달되려면 습식 유통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개장 18년이 지난 화훼공판장 시설은 전자식 전광판 외에 개선된 게 별로 없는 상태다. 냉난방이 현대화되지 못해 여름철에는 꽃들이 쉽게 시들어버리기도 한다.
○ 우유 값이 비싼 이유
다른 농수산물의 실태도 화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농식품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중적인 축산품인 우유는 전체 가격에서 유통비의 비율이 32.6%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27.8%), 일본(20.4%), 영국(30.7%), 호주(23.0%)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한국 우유의 가격에서 유통비 비율이 높은 원인으로는 작은 포장제품의 비율이 높다는 점이 꼽힌다. 예컨대 미국이나 영국은 1L 이상의 용기에 팔리는 우유가 전체의 84%가량이지만 한국은 6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비교적 제조 원가가 높은 종이팩 우유 비율도 한국에서 유독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팩 우유의 비율은 한국이 80%인 반면 영국과 미국은 10%대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한국 소비자 특성상 편리한 가정배달을 선호하고, 신선도를 고려해 재활용품이 아닌 종이팩을 당연시한다는 점이 유통구조를 단순화하려 해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특용작물인 인삼의 경우 수삼의 유통비용이 전체 가격의 64.2%를 차지할 정도다. 품목별 평균 유통비용 비율 51.3%보다 높은 수준이다.
인삼 유통비는 농협 조합별로 판매코너가 산재된 점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마다 2, 3개씩 널린 판매점을 지역마다 1곳으로 통합해 임금과 유통비를 줄여 본다는 계획이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