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뛴다]증권사들 “가자 아시아로”

  • 입력 2009년 2월 23일 02시 54분


“글로벌 투자은행 도약 원년”

사무소 개설… 헤지펀드 운용… 中-日-印尼 등 잇단 진출

《이달 4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함께 국내 증권업계는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도약하기 위해 해외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부담이 더욱 커졌다. 업종 간 장벽이 허물어지며 경쟁은 더 치열해지지만 지난해 금융위기로 국내 금융사의 ‘역할 모델’이라고 여겨졌던 해외 유수 IB들이 문을 닫았고, 국내 증시도 직격탄을 맞아 증권사 수익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업계는 위기를 기회로 해외를 통한 신성장동력 발굴에 매진한다는 계획이다. 각 증권사는 해외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해외와 연계한 다양한 금융상품 개발에 고심하고 있다. 》

○ 아시아 시장을 발판 삼아 해외로

국내 증권사들은 최근 앞 다퉈 아시아 시장부터 선점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신증권은 이달 4일 자본시장법 시작과 함께 홍콩현지법인 개업식을 열어 홍콩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홍콩에 현지법인을 세운 것은 아시아 금융 허브인 홍콩에서 사업 역량을 쌓아 해외사업 확대를 위한 정보 수집, 글로벌 금융기관 등과의 네트워크 확보를 위해서다.

이번 개업한 홍콩법인은 주식 브로커리지 업무와 현지법인의 자기자본을 활용한 투자 사업 글로벌 시장 정보 분석을 담당한다.

대신증권은 이 외에도 일본과 중국, 카자흐스탄을 해외진출 전진기지 가운데 하나로 정해 수익사업을 발굴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지역 경제를 파악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대우증권은 올해 초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일본 도쿄사무소를 지점으로 승격할 계획이다.

대우증권 베이징사무소는 중국 내 IB업무를 지원하고 해외적격기관투자가(QFII), 국내적격기관투자가(QDII)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도쿄사무소는 엔화표시채권발행 등 일본과 관련된 IB 사업과 일본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한 브로커리지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메리츠증권은 최근 중국 상하이에 현지 회사인 중경해욱건설과 함께 합자 투자자문회사인 ‘화기투자자문유한공사’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중국 금융시장과 관련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및 자기자본투자(PI) 컨설팅, 인수합병(M&A) 컨설팅 등 금융 관련 컨설팅 업무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증권은 3월 초 일본 도쿄에 사무소를 열 예정이다. 국내 증시가 선진시장에 편입하면 보수적인 일본 기관투자가들이 국내 증시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또 지난달 조직개편에서 글로벌리서치본부를 신설해 해외 진출 사업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서

과거 증권사들의 해외진출 방식은 해외 투자자의 자금을 주식위탁거래로 유치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증권사가 자원개발, 새로운 금융기법 도입, 헤지펀드 운용 등 다양한 사업을 동시에 전개하고 있다.

올해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국내에서도 헤지펀드 설립이 허용된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는 하나대투증권이 2007년 처음으로 싱가포르에 헤지펀드(HFG펀드)를 설립한 이후 국내 증권사들은 사업 경험을 쌓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한국투자증권은 글로벌 헤지펀드 운용사인 아틀라스 캐피탈 매니지먼트와 손잡고 투자 전문회사 케이아틀라스를 싱가포르에 설립해 헤지펀드를 운용 중이다. 한국투자증권 측은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원화 기준 70%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며 “본격적인 헤지펀드 시대에 필요한 운용 능력을 쌓는 중”이라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도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주식, 채권, 실물자산 선물, 환율 등에 투자하는 ‘글로벌 어퍼튜니티 펀드’와 ‘아시아 멀티 스트래티지 펀드’ 등 2개의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최근 새로운 자본으로 각광받는 이슬람 금융 도입도 증권업계의 관심사다.

굿모닝신한증권은 말레이시아 증권사와 제휴해 이슬람 채권인 ‘수쿠크’ 투자에 나섰다. 수쿠크는 이자를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투자자들에게 이자 대신 ‘배당금’을 지급하는 이슬람 채권. 최근 고유가로 자금이 풍부해진 이슬람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한국 금융회사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회사들 사이에서 자금조달 창구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여름 이슬람 율법(샤리아)학자를 영입했다. 이 회사는 글로벌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 샤리아 율법에 부합하는 국내 기업들을 선별해 이슬람 자금을 본격적으로 유치할 계획이다.

증권사의 해외 진출은 이어지고 있지만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에 더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토러스투자증권의 원재웅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 증권사는 20년간 해외 시장에 진출했지만 진출 규모는 대형 증권회사라도 4, 5개의 해외거점과 몇 십 명의 인원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글로벌 투자은행과 경쟁해서 이기려면 무엇보다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이를 뒷받침할 자기자본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해외 IB의 귀재들을 데려오라”▼

증권사들, JP모간·메릴린치 등서 인재 영입 경쟁

국내 증권사들은 인력 및 조직 운영 면에서도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외 금융회사들이 고전하는 틈을 타 이들의 인재를 잇달아 영입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베어스턴스 아시아에서 주식 및 파생상품영업 대표를 지낸 마이클 뷰겔 씨와 ABN암로홍콩에서 자산관리 영업을 담당하던 빈센트 유를 이달 영입했다.

HSBC 및 JP모간 등에서도 일한 바 있는 뷰겔 씨는 “미래에셋이 세계 유수의 글로벌 투자은행들과 본격적으로 경쟁해 나가도록 유도하고, 전세계 투자자들이 이 회사를 통해 시장에 참여하게끔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미래에셋은 지난해 씨티그룹 수석 전략가를 지낸 아제이 카푸 씨와 노무라증권에서 에너지 및 유틸리티 수석분석가를 지낸 로한 델지엘 씨를 영입하는 등 글로벌 리서치 조직을 강화하기도 했다.

삼성증권도 이에 맞서 지난해부터 글로벌 인재 영입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3월 메릴린치 총 리스크관리 담당임원 권경혁 전무를 영입했으며 8월에는 모건스탠리 서울지점 IB부문 대표를 지냈던 박성우 전무를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했다.

이 회사는 최근에도 홍콩법인 사업부문을 기업금융 트레이딩, 기관대상 홍콩 주식 중개, 자기자본 투자(PI)등 4개 영역으로 확대하고, 각 부문에서 현지 최고 인재를 영입한다는 방침을 세운 뒤 현재 대상자 면접 등을 진행 중이다.

삼성증권 측은 “홍콩 지역은 유럽이나 미국보다 금융위기로 인한 피해가 적어 그만큼 우수 인력의 유출도 적은 편”이라며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한 검증으로 공을 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HMC투자증권도 지난해 9월 강준 전 맥쿼리증권 대표이사를 자산운용본부장(부사장)으로 스카우트했다. 강 부사장은 20여 년 동안 파생상품, 펀드, 기업금융, 트레이딩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국내 증권사들의 글로벌화는 최근의 조직 개편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해외지역에 리서치센터를 세우고 현지 전문가를 직접 채용해 현지 기업을 분석하는 글로벌리서치센터의 신설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 3월 국내 증권사로는 최초로 중국에 ‘북경(北京)리서치센터’를 세웠다. 이곳 인력은 리서치센터장을 제외한 애널리스트들이 대부분 현지인으로 꾸려졌다.

또 지난해 7월 미래에셋증권이 글로벌리서치센터를 설립했으며 최근에는 삼성증권이 사장 직속으로 글로벌 리서치본부를 세웠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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