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서울 구로구 구로5동 ‘신도림 테크노마트’ 6층.
‘스트리트파이터4 게임대회’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류’ ‘켄’ ‘춘리’ ‘장게프’ 등 추억의 캐릭터들을 보며 아이들보다 더 환호하는 어르신들, 바로 3040 오락실 ‘형님’들입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동네 오락실을 휩쓴 게임 ‘스트리트파이터’가 올해로 탄생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 게임을 만든 캠콤엔터테인먼트는 이를 기념해 12일 새로운 스트리트파이터를 비디오 게임용으로 발매하고 국내 스트리트파이터 최강자를 뽑는 이벤트를 연 것이죠.
참가자와 관객 등 총 200여 명이 참가한 이날 대회에는 10대와 20대만큼이나 많은 3040세대가 눈에 띄었습니다. 심지어 50대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1980, 90년대 추억의 오락실 게임들이 비디오 게임으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습니다. 추억의 힘이 잠자던 ‘오락실 키즈’들을 깨우고 있는 것이지요. THQ코리아는 1980년대 프로레슬링 게임을 21세기 디지털 버전으로 바꾼 ‘WWE 레전드 오브 레슬마니아’를 다음 달 발매할 예정입니다. 헐크 호건을 비롯해 워리어, 밀리언 달러 맨 등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옛 프로레슬링 영웅 37명이 2009년에 부활한 셈이죠.
그런가 하면 ‘뿅뿅 게임’이라 불리던 1980년대 아케이드 게임을 묶은 패키지도 인기입니다.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코리아(SCEK)는 ‘수왕기’ ‘슈퍼 시노비2’ 등 ‘세가’의 오락실용 비디오 게임 40개를 묶은 ‘소닉스 얼티밋 제네시스 컬렉션 2009’를 10일 내놨고 ‘반다이 코리아’도 ‘제비우스’ ‘킹 앤드 벌룬’ 등 ‘남코’사(社)의 옛 게임 11개를 한데 모은 옴니버스 타이틀 ‘남코뮤지엄2’를 발매했습니다. 그간 온라인, 모바일 게임으로 오락실 게임이 부활한 경우는 있었지만 비디오 게임으로 새롭게 각색된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들의 부활에는 몇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먼저 ‘점자’ 그래픽이었던 게임들이 고화질(HD)급 해상도로 화려해졌다는 것이죠. 또 ‘내 멋대로 모드’가 추가된 점도 특징입니다. ‘WWE 레전드 오브 레슬마니아’의 경우 헤어스타일부터 옷, 입장 방법까지 자신만의 프로레슬러를 만들 수 있다네요. 아예 새로운 이야기로 각색된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달 23일 발매된 ‘북두의 권-라오우 외전 하늘의 패왕’은 원작 주인공인 겐시로 대신 그의 형 라오우가 1인자로 등장하죠.
이렇듯 비디오 게임업계가 ‘추억 마케팅’을 펼치는 이유는 ‘불경기’ 때문입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좀처럼 밖에 나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비디오 게임 업체들이 새로운 마케팅 대상으로 잡은 셈이죠. 옛날 게임들은 대부분 복잡하지 않아 아빠와 자녀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오락실 게임들이 부활하면서 축 처진 3040 형님들의 ‘기’도 살아났습니다. 100원짜리 동전을 짤짤거리며 오락실을 드나들었던 3040 형님들, 옆에 아들 딸 앉혀 놓고 “왕년에 내가 말이야…”라며 폼 잡아보세요. 가끔씩 “에헴” 하며 헛기침하는 것도 잊지 말고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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