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대규모 감원 힘든 상황서 고육지책”
기존 직원 임금도 조정… 노조 수용이 변수
한국 주요 그룹들의 ‘인위적 감원(減員) 없는 위기 극복’ 전략이 ‘대졸(大卒) 신입사원의 임금 삭감’이란 전술로 구체화됐다.
30대 그룹 채용 담당 임원들은 25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회의’를 열고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최대 28%까지 깎고 기존 직원의 임금도 최근 경제 상황에 맞게 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이날 30대 그룹의 의견을 취합한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발표문’을 통해 “기업별로 대졸 초임이 2600만 원을 넘을 경우 경영 여건에 따라 최대 28%까지 삭감하고 2600만 원 미만인 기업도 전반적인 하향 조정을 유도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전경련은 이날 대졸 초임 삭감률로 △연봉 2600만∼3100만 원은 0∼7% △3100만∼3700만 원은 7∼14% △3700만 원 초과는 14∼28% 등 구체적 수치까지 제시했다.
정병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한국 기업은 선진국처럼 몇만 명씩 줄일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고육지책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삭감 기준인 2600만 원은 지난해 직원 수 100인 이상 국내 기업 대졸 초임인 연 2441만 원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2배 수준인 일본 기업들의 지난해 대졸 초임 연 2630만 원 등을 근거로 산정한 것이라고 전경련은 설명했다.
전경련이 이날 내놓은 ‘대졸 신입사원 임금수준 국제비교’ 자료에 따르면 2007년 기준으로 한국의 대졸 신입사원들이 첫해 받는 연봉은 평균 2379만 원으로 일본의 1943만 원보다 400만 원 이상 많다.
두 나라의 경제 수준을 고려하면 이런 격차는 더 벌어진다. 같은 해 기준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한국이 1829만여 원, 일본이 3493만여 원으로 일본이 한국의 갑절 수준이다. 단순 계산으로는 한국 신입사원들은 한국 국민의 1인당 총소득의 1.3배를 버는 반면 일본 신입사원들은 일본 국민 1인당 소득의 55.6% 를 받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 대기업들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
대부분의 기업은 “대졸 신입사원 초임 삭감 취지에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 주요 그룹의 임원은 “정치권에서 자꾸 요구하는 ‘무조건 투자 확대’는 경기침체로 매출이 줄어든 기업들에 ‘울며 겨자 먹어라’는 것이지만, 임금 삭감 방안은 고비용의 거품을 빼는 의미가 있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주는 격’”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계열사별로 10∼15% 삭감해 발생하는 여유 자금으로 고용 안정에 활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그룹과 LG그룹도 각각 대졸 초임의 10% 안팎, 5∼15%를 감봉해 일자리 나누기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강성 노조가 있는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측은 “큰 틀에서 (임금 삭감에) 동의하지만 세부 내용은 정해진 것이 없다”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포스코 GS KT 등 일부 그룹도 “전경련의 방안에 적극 동참한다는 계획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나온 것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 잡셰어링에 박차 가하는 공기업들
민간 기업보다 먼저 잡셰어링에 나선 공기업들의 경영 행보도 이날 전경련의 발표로 다시 주목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1월 중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공기업들이 지나치게 높은 대졸 초임을 낮춰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최근 한국전기안전공사는 전 직원이 성과급을 15% 반납하고 신입사원도 초임을 최대 15% 삭감해 올해 신입사원 모집 인원을 당초 계획(45명)보다 27명 많은 72명을 뽑기로 했다.
한국수자원공사도 신입사원의 연봉을 15% 정도 깎아 예년 수준인 90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런 방안에 대한 내부 반발도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한 공기업의 간부는 “지금까지의 잡셰어링은 신입사원의 초임을 낮추거나 직원들의 성과급 일부를 반납받아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어서 노조의 반발이 거의 없었다”며 “그러나 기존 노조원들의 임금을 깎는 방안에 대해서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