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한국증시 추가하락에 베팅?

  • 입력 2009년 2월 26일 23시 23분


연초 한국을 다시 찾는가 싶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다시 한 번 국내 금융시장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외국인은 10일부터 26일까지 13거래일 연속 '셀 코리아'를 이어가면서 한국 주식 약 2조 원 어치를 팔아치웠다. 또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 달러화로 바꿔나가는 과정에서 원-달러 환율도 연일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물론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는 기본적으로는 동유럽발(發) 위기, 미국 금융기관들의 국유화 논란 등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이들의 주식 매매 흐름을 보면 이보다 더 불길한 정황이 포착된다.

●현물이어 선물마저 대량매도

외국인은 지난해 12월 선물(先物) 만기일 이후 이달 25일까지 코스피200지수선물 4만3118계약을 누적 순매도했다.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불거졌던 2007년 8월의 사상 최고치(4만5500계약)에 근접한 수치다. 특히 현물시장의 매도공세가 시작된 이달 10일 이후에만 3만계약이 넘는 매도세가 집중됐다.

선물은 미래의 시점에 현재 정한 일정 가격으로 매매하는 것으로, 향후 상품가격에 대한 방향성을 내포한다. 따라서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선물을 많이 파는 것도 기본적으로 국내 증시의 추가하락에 배팅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시장의 전반적인 투자심리도 함께 악화될 수밖에 없다.

외국인의 선물 매도는 현물 지수 하락의 직접적인 요인도 된다. 외국인의 대량 매도로 선물 가격이 급락하면, 시장에서는 값싼 선물을 사는 대신 상대적으로 비싼 현물을 내다파는 차익거래(프로그램 매도)가 발생한다.

이 같은 현상은 25일 증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전날(24일) 미국 다우지수가 3.3% 급등한 영향으로 이날 일본 증시는 2.6% 상승했지만 코스피는 고작 0.3% 반등하는 데 그쳤다. 이날 외국인이 4000계약이 넘는 지수선물을 팔아치우자, 투신 등 기관투자자들이 이를 받아내며 현물시장에서 1800억 원의 매물을 쏟아냈다. 실제로 투신사는 외국인의 매도세가 집중됐던 11~25일 2조4000억 원 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하며 코스피에 부담을 줬다.

대신증권 이승재 연구원은 "결과적으로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매도세가 커져 코스피 지수 상승에 큰 부담을 줬다"며 "비록 26일엔 외국인이 지수선물을 소폭 순매수했지만 그동안 매도량을 감안하면 아직 추세가 바뀐 것 같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 증시 추가 하락에 베팅

외국인들이 국내 증시가 앞으로 하락할 것으로 보는 것은 우선 최근 한국의 주가지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선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세계 증시와 보조를 맞추려면 앞으로 더 떨어져야 한다는 것. 연초 이후 25일까지 미국 다우지수가 17.2%,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15.8% 떨어지는 동안 코스피는 5.1% 하락하는 데 그쳤다. 또 코스닥지수는 오히려 30포인트가 올랐다.

우리투자증권 강현철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대외 환경이 다시 불안해지면서 외국인들 이상대적으로 지수가 덜 떨어진 한국 증시의 단기조정 가능성에 베팅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했다.

외국인들의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것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다는 점에 주목해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거의 매달 하향 조정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26일 "한국 기업들은 고환율과 낮은 원자재 가격 때문에 수혜를 받겠지만 전 세계적인 수요감소는 이런 긍정적인 요인을 모두 상쇄할 것"이라며 "결국 한국 기업들의 올 1분기 수익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국내 외환시장 여건이 좋지 못한 것도 한국 증시의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동유럽 국가의 부도위기 및 글로벌 기업 파산우려 등 세계 공통의 악재 뿐 아니라 한국에는 북한 움직임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와 국내 은행들의 외화유동성 문제 등 내부 요인이 산적해 있다.

게다가 외국인들이 3,4월에 집중된 사업연도 결산기에 국내 기업의 배당금까지 받아나가게 되면 외환시장은 더 불안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대우증권은 이 기간 외국인이 받을 배당금 규모가 24억9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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