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투데이]동시에 금융악재 터지는게 불확실성보다 낫다

  • 입력 2009년 2월 27일 02시 58분


몇 년 전 ‘패닉 룸’이란 영화가 있었다. 패닉 룸은 집에 강도가 침입하거나 화재가 발생했을 때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방을 일컫는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해 주게끔 튼튼한 방호시설로 되어 있는데,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미국 부호들은 집에 그런 방을 하나쯤 만드나 보다. 그 영화를 본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버킹엄 궁에 패닉 룸을 만들고 싶다고 해서 다시 한 번 유명세를 탔다.

최근 동유럽 국가의 부도 가능성이 언급되면서 2차 금융위기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근거 없는 낭설인 것만은 아니다. 헝가리를 비롯한 라트비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이미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가불 해 갔다. 여기에 최근 세르비아가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할 것을 논의하고 있고 루마니아도 곧 협상을 개시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러시아를 제외한 동유럽 국가들이 서유럽 은행들로부터 빌려 간 돈은 1조7000억 달러다. 서유럽 국가들 중에서 오스트리아와 독일 그리고 스웨덴이 제일 많이 걸려 있다. 만약 동유럽이 잘못되면 이들 나라도 무사할 리 없고 유로화의 가치도 폭락할 것이 자명하다.

미국의 구제 금융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다. 급기야 은행의 국유화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미 기력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시 휘청거린다. 그래서 유럽 정상들도 다급하게 모여 세계를 살리자는 결의 대회도 하고 아시아는 아시아대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친다.

그래도 첩첩산중이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은 있다. 이왕지사 피할 방법이 없다면 단시간 안에 모든 악재가 터지는 것이 낫다. 시장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다.

이제 글로벌 금융시장은 종반부를 향해 숨 가쁘게 치닫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외환시장은 비이성적 공포심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다. 주식시장도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고 있다. 때마침 남북관계도 최고의 긴장도를 연출한다.

이 모든 공포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패닉 룸은 과연 있을까. 이미 6개월째 전대미문으로 공급되고 있는 유동성과 청산 가치의 반값 이하로 폭락한 주가가 유일한 패닉 룸일 것이다.

이상진 신영투자신탁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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