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시 쓰려고 정부가 모아놓은 외화자산
보유비용 부담… 많다고 꼭 좋은건 아녜요
외환보유액이란 한 나라의 외환당국(정부 및 중앙은행)이 보유한 대외지급준비 외화자산을 의미합니다. 즉 비상시에 쓰려고 모아 놓은 외화자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이나 일반 은행 등이 갖고 있는 외화는 외환보유액으로 치지 않고 정부와 중앙은행인 한은이 갖고 있는 외화자산만을 외환보유액에 넣고 있습니다.
외환보유액은 경상수지 흑자 등으로 늘어난 시중의 외환을 정부나 한은이 사들임으로써 증가합니다. 이렇게 모은 외환보유액은 어디에 쓰일까요?
우선 외환보유액은 외환시장의 충격에 안전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원-달러 환율이 갑자기 급등(원화가치 급락)하면 원화로 환산한 수입 원자재나 부품의 값이 올라 국내 물가수준이 높아지게 됩니다. 일정 수준 이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입업체나 국내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정부나 중앙은행은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줄이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게 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외환보유액입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판단하기에 원-달러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 급등했다면 갖고 있던 미국 달러화 등 외환을 내다 팔아 환율을 안정시킵니다.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으면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달러의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면 투기 등으로 외환시장에 불안정성이 나타나더라도 외환당국이 보유한 외환을 매각해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때 특히 외환보유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사가 많아지는데 이는 외환보유액이 환율 안정을 위해 쓰이기 때문입니다.
외환보유액은 다른 나라에 빚진 돈을 갚을 때도 필요합니다.
해외에 돈을 빌려준 나라들은 돌려받을 때 세계 어디에서나 쓰이는 달러, 유로 같은 화폐로 받기를 원합니다. 돈을 빌려달라는 나라가 외환을 충분히 보유했다면 “떼일 염려가 없겠다”고 생각해 다른 나라들이 쉽게 돈을 빌려주고, 갚기를 종용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돈을 빌리려는 나라가 갚아야 할 빚이 외환보유액보다 많다면 다른 나라들은 떼일 것을 염려해 돈을 빌려주지 않거나 이미 빌려준 것도 상환하라고 종용하기도 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바로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당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80억 달러 정도였는데 다른 나라에 갚아야 할 빚은 외환보유액의 10배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한국에 돈을 빌려줬던 국가들이 서둘러 상환을 요구했고,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외화를 빌려 급한 불을 끌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넉넉한 외환보유액은 국가 신인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부는 적당한 수준의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려고 하는 겁니다.
2월 말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015억 달러입니다. 세계 6위 수준의 외환보유액이지만 이를 두고서도 적당하다, 부족하다 의견이 엇갈립니다. 그럼 적정한 외환보유액의 수준은 얼마일까요.
IMF는 “외환보유액의 적정 수준은 각국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 나라의 무역 규모, 단기외채의 규모, 만기가 곧 돌아올 장기외채의 규모, 위기가 생겼을 때 유출될 가능성이 있는 외화의 규모(외국인 주식투자 규모) 등을 감안해 산출하며 해당 국가의 지정학적 위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모두가 동의하는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외환보유액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걸까요. 얼핏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외환을 보유하는 데는 ‘기회비용’이 따르기 때문이죠. 정부와 한은이 외환보유액을 쌓으려면 외화를 사들여야 하고, 외화를 사들이는 돈은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등 국채를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팔아 마련하기 때문에 채권에 대한 이자를 줘야 합니다. 외환보유액이 늘어날수록 채권에 지급되는 이자도 증가해 정부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한은은 외환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을 줄이려고 외환을 금고에 보관하는 대신 국제 금융시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운용해 수익률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