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는 단연 환율이었다. 달러당 900원 선이 깨질 가능성이 점쳐지던 시점이었다. 낮은 환율 때문에 현대차는 미국에 차를 팔아도 손에 쥐는 원화는 얼마 되지 않았다. 가격경쟁력 약화로 판매도 줄어들었다. 현대차의 2006년 11월 미국시장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14.9% 감소했다. 반면에 일본 도요타는 같은 기간 15.9%, GM도 5.8% 판매가 늘며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환율이 900원 선마저 무너진다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장사가 될 공산이 컸다. 김 부회장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현대차의 순이익은 900억 원 정도 줄어든다”며 “비용과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현대차는 연구개발 단계에서부터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설계가 나와야 한다는 비상대책을 내놨고 이에 따라 연구소는 밤잠을 설쳐야 했다. 부품업체도 생산비용을 1원이라도 줄이기 위해 마른수건을 다시 짜야 했다. 삼성, LG, 현대중공업 등 다른 수출기업의 위기감도 높아만 갔다. 모두들 비상경영을 펼치며 체질 개선과 원가 절감을 할 수 있는 기술개발을 통해 환율의 파고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2년 3개월이 흐른 2009년 3월 6일 달러당 환율은 1550원. 일본과 한국은 정반대의 상황이 됐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전체적인 매출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한국 수출기업 처지에서는 강력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
덕분에 현대·기아차는 해외시장에서 선전(善戰)을 펼치고 있다. 세계 10대 자동차 회사 중에서는 판매 하락률이 가장 낮다. 환율의 도움과 함께 2006년과 2007년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강한 체력을 다진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과연 지금의 상황이 기회이기만 할까. 자동차 전문가들은 오히려 위기의 전조(前兆)일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엔화의 가치가 사상 최대로 폭등하면서 일본 자동차회사의 수익은 급격히 악화됐다. 도요타는 지난해 1963년 결산을 공개하기 시작한 이후 최초로 적자를 냈다. 최근 판매가 30∼40% 줄어든 일본 자동차회사들은 2년 전 현대차가 했던 배수진(背水陣)의 심정으로 원가 절감과 구조조정에 나섰다.
2년 전의 현대차처럼 일본차 업계가 지금의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넘긴다면 한층 강화된 경쟁력으로 한국차를 궁지에 몰아넣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차를 비롯한 수출업계가 더욱 고삐를 죄지 않는다면 이번 기회는 곧 위기로 바뀔지도 모른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석동빈 산업부 차장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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