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안타는 ‘큰 손’ 행렬에 건설사 고급화 전략으로 대응
○ ‘한남더힐’ 대부분 계약 완료
금호건설이 지난달 서울 용산구 한남동 옛 단국대 터에 분양한 고급 임대주택 ‘한남더힐’은 최근 계약이 대부분 완료됐다. 한남더힐은 임대보증금이 14억∼25억 원 선이고 월 임대료만 최고 429만 원에 이른다. 분양 물량은 467채(215∼332m²)다.
이처럼 가격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도 한남더힐은 평균 4.3 대 1의 비교적 높은 청약경쟁률을 나타냈다. 규모별로는 최고 51 대 1까지 치솟아 미분양으로 고전 중인 건설업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금호건설 관계자는 “정확한 계약률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분양 물량 대부분이 계약됐다”며 “투자보다는 실제 거주할 목적으로 계약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 말했다.
쌍용건설이 지난해 6월부터 분양 중인 종로구 평창동의 고급주택 ‘오보에힐스’(19채·466∼492m²)도 절반가량이 계약됐다. 가격은 한 채에 29억∼34억 원이다. 쌍용건설 측은 “고급주택이 밀집한 평창동은 집을 사고 싶어 하는 수요자들이 적지 않지만 새 집은 물론 기존 매물도 거의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며 “올해 들어 2채가 계약됐으며 최근 들어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LIG건영은 지난해 말부터 성북구 성북동에 고급 주택 ‘게이트힐즈’(12채·515∼598m²)를 분양하고 있으며 이 중 1채가 계약됐다. 지하 1층∼지상 2층 단독주택 형태로 채당 분양가는 40억∼50억 원이다. LIG건영 측은 “부유층일수록 경기 흐름을 덜 타기 때문에 경기침체가 시작됐어도 그대로 분양을 진행했다”며 “현재 구축 중인 잠재 수요층의 데이터베이스(DB)가 완료되는 대로 설명회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건설은 요즘 같은 시기가 올해 7월 입주 예정인 평창동 ‘롯데캐슬 로잔’(112채·분양가 14억∼20억 원)의 미분양 물량을 판매하기 좋은 기회라고 판단해 고액 자산가들에게 발송하는 홍보물의 양을 늘리고 있다.
○ 불황일수록 고급화로 브랜드 이미지 높여
부동산 전문가들은 고액 자산가들은 원하는 요건을 갖춘 주택만 있으면 경기에 관계없이 구매하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이들을 겨냥해 활로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부사장은 “자산을 불리는 단계를 지나 이미 형성한 자산을 관리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도심에 있으면서도 쾌적하고 사생활이 보호되는 그들만의 주거단지가 생기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고 말했다.
고액 자산가들이 원하는 주택 유형이 단독주택→아파트→주상복합아파트를 거쳐 최근 타운하우스나 저층 빌라 등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현상을 포착한 것도 주효했다.
금호건설은 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고액 자산가들이 고층이어서 답답한 데다 창문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 등 불편함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를 설계에 반영했다. 이에 따라 한남더힐을 3∼12층으로 낮게 짓고 창문을 활짝 열 수 있게 하는 등 수요자들의 희망사항을 최대한 반영했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불황 때 고급 제품을 공급하고 홍보하면 ‘경제위기 속에서도 비싼 상품을 만드는 잘나가는 기업’이란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이렇게 생긴 브랜드 인식은 경기가 좋아지면 대량 공급이 가능하도록 상품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도 좋은 효과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