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시장이 가장 경기에 민감해요”

  • 입력 2009년 3월 14일 14시 03분


불황에 예외는 없었다. 명품관 최상위 고객들도 지갑을 닫았다. 롯데백화점 애비뉴엘 퍼스널쇼퍼 양유진 실장이 멤버스클럽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경임 기자
불황에 예외는 없었다. 명품관 최상위 고객들도 지갑을 닫았다. 롯데백화점 애비뉴엘 퍼스널쇼퍼 양유진 실장이 멤버스클럽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경임 기자
애비뉴엘 퍼스널쇼퍼 양유진 실장

"명품관 이용 고객들은 불황에 타격을 받지 않을 것 같다고요? 사실은 경기에 더 민감하답니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명품관 애비뉴엘 양유진 실장(47)은 요즘 명품 시장도 극심한 불황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양 실장은 연간 평균 1억 원 이상 구매하는 최상위 고객 LVIP(Limited VIP)의 맞춤형 쇼핑을 도와주는 퍼스널 쇼퍼다.

애비뉴엘의 LVIP는 250명 가량. 이들은 주로 멤버스클럽룸을 찾아 양실장이 직접 골라 놓은 상품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쇼핑을 한다. 12일 찾아가본 멤버스클럽룸은 마치 고급 빌라의 거실을 옮겨 놓은 듯했다.

"주식 대폭락이 시작된 지난해 7, 8월 이전부터 고객 방문이 줄기 시작하더니 지난해 연말에는 절반으로 줄었어요. 막상 오셔도 예전 같으면 옷 두 벌 살 분도 한 벌만 사고 말지요. 모피는 5~6월쯤 사이즈를 재서 미리 주문했다가 겨울에 찾아가곤 했는데 연말에 70% 정도가 구매 취소를 하셨어요."

양 실장의 고객들은 주식이나 부동산 고수들이 많아 경제 흐름을 읽어내는 데 아주 빠른 편이다. 남편 수입과 별개로 본인이 재테크를 하던 '사모님'들이 지갑을 가장 먼저 닫았다. 그는 이런 현상에 대해 '심리적 위축감'으로 설명했다.

"정작 돈이 없어서라기보다 100억 주식 투자했다가 70억을 잃게 되면 돈을 쓰기가 망설여질 수밖에 없어요. 30억원만 남아도 부자이지만 손실이 워낙 크다보니 당연히 소비를 줄이게 되는 거죠."

명품 브랜드들이 매출 하락세 만회를 위해 패션쇼 등 각종 행사를 자주 열지만 10명에게 연락해도 참석자는 5~6명에 불과하다. 그는 "부담스러워 하는 듯해 행사 관련 연락을 하기가 이전보다 어렵다"고 말했다. 대체로 패션쇼가 끝난 뒤 마음에 드는 옷이나 가방을 사는데 쇼 참석을 거절하는 것은 구매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양 실장은 이어 요즘 해외에 나가 있는 LVIP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국내 경제가 어수선하니 머리도 식힐 겸 여행 나간 분들이 많더라고요. 여기서 명품 사는 것보다 해외에서 골프 치는 게 비용이 적게 들거든요."

명품시장이 커지면서 명품관 매출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였다. 경기 침체가 본격화된 지난해에도 일본인 등 외국인 매출이 급증해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올해는 매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게 양실장의 예측이다.

"알짜 중소기업 사모님, CEO, 전문직 종사자 분들이 꾸준히 구매를 하시는 편이예요. 금액도 일정해서 과소비를 하시지도 않아요. 소비 패턴을 보면 오래 고객이 되실지, 아닐지도 알 수 있죠."

요즘 양 실장은 매출을 올리는 것보다 고객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상품을 사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카페에서 수다 떨 듯 찾아 올 수 있도록 배려한다. 당장 옷 몇 벌 더 팔기보다 경기 회복된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다

"신뢰감이 쌓이면 장사는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후배들한테도 늘 강조해요. 대화를 자주 하고 고객 사정을 먼저 고려하죠. 골프를 좋아하는지, 여행을 좋아하는지, 스타일이 무엇인지 타깃을 세분화해서 1대 1 대응을 해야 합니다. 신뢰감을 쌓는 데는 공식이 없습니다. 스스로 노하우를 쌓아가야죠."

양 실장의 경력은 국내 명품의 역사와 거의 일치한다. 대학에서 통계학,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1989년 우연히 명품 판매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가 적성에 맞아 눌러 앉았다. 당시 그가 일하던 '삼경무역'은 페라가모, 디올 등 명품 브랜드 200개 이상을 수입하던 명품시장의 개척자였다. 이후 백화점 명품관 등에서 15년간 일했고 2005년 롯데백화점 애비뉴엘이 개점하면서 퍼스널 쇼퍼로 영입됐다.

"지난 20년간 명품시장의 가장 큰 변화는 명품이 많이 대중화되었다는 것, 스타일이 매우 젊어졌다는 것 2가지입니다. 요즘은 멤버스클럽룸 이용도 거침이 없고 고객도 젊은층까지 확장됐습니다. LVIP 마케팅이 시간이 부족한 CEO, 전문직 종사자들을 위한 서비스로 진화한 거죠."

고객 상대를 위해 명품 옷을 주로 사 입는다는 그녀는 "저도 세일이나 직원 할인 기간에 주로 구입한다"며 "내년에는 경기가 좀 풀릴 것이라니 기다려 봐야겠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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