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묻어뒀다면
녹십자 229%-동서 170%
누적수익률 얻었을 것”
《필자는 얼마 전 영화 ‘작전’을 봤다. 주식시장을 다룬 국내 첫 영화라는 점에 끌려 오래전부터 벼르던 일이었다. 개봉한 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운 좋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는 주식시장을 휘젓는 ‘작전 세력’을 그리고 있었다. ‘작전’은 정식 용어로는 주가를 자의적으로 등락시켜 이득을 챙기는 일체의 행위를 뜻하는 ‘시세 조종’(증권거래법상 금지돼 있으며 범죄 사실이 확인되면 처벌을 받는다)이라고 한다. 현실에서도 당국이 수백억 원대의 주가조작 세력을 적발하고 수사에 나섰다는 뉴스가 종종 등장하는 걸 보면 ‘작전’이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닐 듯싶다. 이런 뉴스 끝에는 꼭 작전 세력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개미투자자의 비참한 사연도 덧붙여진다. 이 영화에서도 주식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급 개미투자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거물급 작전세력에 가담해 한탕을 노리던 그의 탐욕과 좌절이 주식시장을 무대로 그려진다.》
“기업이라는 것은 하루 이틀, 한 달 만에 두 배 세 배로 성장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도 왜 주식시장은 널뛰기를 반복하는 걸까. 그건 바로 주식시장이 인간의 욕심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난 단타로 정확히 6개월 만에 깡통을 찼고, 혹독한 시간을 보낸 후 이제는 투자를 할 때 ‘사람’을 먼저 본다.”(정확하지는 않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의 끝맺음자막(엔딩크레디트)이 올라가는 순간 무릎을 탁 쳤다. 주식시장에 몸담고 있으면서 특히 장기투자와 가치투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필자에게 극 중에서 ‘마산창투’로 불리던 일명 ‘슈퍼 개미’의 마지막 대사가 가슴을 울렸다.
6개월여 동안 우리가 해왔던 공부가 이 대사에 녹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런 버핏에게서 배우려는 투자 원칙과 이 대사를 연결지어 생각해 본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경영자가 마음에 드는지 살피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기업을 산다’는 마음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둘째, 기업가치가 며칠 새 바뀌는 것이 아닌 만큼 시장의 변덕스러운 오르내림에 속지 말고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충분히 싼 가격에 구입하라는 것이다.
가치투자의 방법과 매력을 얘기할 때마다 늘 듣는 질문이 있다. 우리 시장에서도 장기 가치투자가 통하느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치 있는 주식을 장기 보유하기보다 단기적으로 가시화된 차익을 실현해 얻는 현금을 더 선호한다. 이렇다 보니 악재나 호재, 각종 이벤트에 출렁이는 테마주가 생겨난다. 주식시장은 투기와 도박이 난무하는 혼란의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버핏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 시장에서 장기투자, 가치투자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즉 ‘5년 전 주식시장에서 버핏의 원칙을 적용해 가치투자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당시의 가치주를 선정해서 결과를 분석했다.
표에 나오듯이 5년 전 당시 기업의 과거 5개년(2000∼2004년) 실적에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정량적 기준, 정성적 기준을 적용하여 가치주를 뽑았다.
대표적 사례인 녹십자와 동서를 보자. 2004년 초 이들 기업에 투자해 올해 2월 말 현재 보유하고 있었다면 각각 229%, 170%의 누적수익률을 얻었을 것이다. 같은 기간 우리 주식시장은 52% 올랐다. 이 종목만 봐도 버핏식 장기투자, 가치투자의 위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으리라.
다시 영화 속 얘기로 돌아가 보자. 작전세력에 편승해 한탕을 노리던 주인공은 어떻게 됐을까. 주인공은 우량주를 싸게 사서 장기간 묻어두는 이른바 가치투자자로 ‘전향’한다.
평소 꿈이었던 연극배우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을 묘사하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는 비중이 낮은 단역을 맡고 길거리에 포스터를 직접 붙이는 허드렛일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포스터를 붙이고 난 그가 피곤한 몸을 싣는 차는 고급 외제차다. 영화이기에 일면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이 대목은 장기 가치투자의 묘미를 색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꽤 유익하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주식시장에 악재가 산재한 시기다. 오히려 이런 때를 저가매수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판단력과 용기가 있다면 몇 년 후 우리도 고급 외제차를 타지는 않더라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지 않을까.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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