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3월 위기설’이다. 이는 근래에 더욱 고착화된 ‘계절적 외환수급’과 관련이 깊다. 특히 올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달러 구하기가 어려워져 ‘위기설’이 더욱 커졌다.
외환시장의 위기감이 고조됐던 지난 몇 달간 외평채 가산금리 등 이른바 국가대표 신인도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을 보면 이번 일은 단지 외환 수급과 심리에 국한된 문제다. 사실 올해 우리나라 은행의 단기외채는 2, 3월에 연간 만기 금액의 절반 이상이 집중됐다. 그 규모가 4월부터는 확연히 줄어들어 이제는 ‘위기 시비’가 아니라 과도한 원화절상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어쨌든 복잡했던 3월이 그럭저럭 다 지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외환 관련 문제는 이제 모두 해소된 것일까. 어떤 약점들을 보강해야 해마다 겪는 위기설이 잠잠해질까.
이는 아마도 이벤트성 대응이 아니라 실물경제가 뒷받침된 질적인 ‘외환체력 관리’에 답이 있을 것이다. 세계 신용평가사들이 우리 은행권의 미래 손실을 들먹이고 한국 간판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건드리는 속내는 다가올 경기침체와 그에 따른 한국경제의 취약성을 들춰내려 함이다. 앞으로 우리가 정녕 세계에 보여줘야 할 것은 단순한 ‘달러 차환능력’이 아니라 수출기업의 외화 획득력과 국제수지의 안정성이며 혹시 모를 ‘경기와의 장기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내성 관련 스토리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10년 전 외환위기와 그 후 카드사태를 통해 어지간히 깐깐한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음이 입증돼야 하고 최악의 상황을 고려한 금융부실 처리 해법들이 대외로부터 객관적인 신뢰를 얻어야 한다.
이런 요소는 결국 향후 주가를 좌우하고 증시의 체계적 위험을 잠재우는 동시에 외국인투자가를 국내 증시로 불러들이는 근원적 힘이기도 하다. 세계경제의 침체 여부는 우리가 손댈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침체가 아무리 오래 지속돼도 국내 기업이 적절한 환율 레벨에서 중국보다 경쟁력 있는 물건을 만들고 일본보다 수요층이 훨씬 두꺼운 좋은 상품을 내다 팔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내 주가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내성을 갖고 회복기에 가공할 폭발력을 갖는 전제조건이 된다.
금융이 강한 나라들이 고전하는 사이에 결국 제조업이 강한 국가의 지위가 얼마나 향상되느냐가 이번 세계경제 위기와 향후 글로벌 질서 재편을 보는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특히 우리는 파생상품으로 멍들지 않은 주택시장과 금융회사들의 속임수 없는 깨끗한 장부와 금융 종사자들의 건전한 도덕성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잠시 왔다가는 유동성 해빙무드에 취할 것이 아니라 진짜 ‘봄날 증시’를 맞이할 체력을 함양해야 한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