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G를 비롯한 미국 경영진들의 도덕적 해이는 가히 심각한 수준이다. 이들에게는 영혼도 없고 윤리도 없다. 단지 기업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기계에 불과하다. 이들은 이사회에는 충성했지만 그 대신에 국가와 사회를 배반했다. 이들에게 장부상의 이익과 배당 그리고 주가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주주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경영자를 원했고, 경영자들은 대주주들의 대의기구인 이사회에 충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미국 기업들의 경영목표는 ‘순이익 증가’라는 단일 구호 아래 정리됐다.
이 구조에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 같은 단어들은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은 변동비를 줄이기 위해 생산시설 이전이나 극단적 감원 같은 일을 서슴지 않았고, 그 결과 일자리가 줄어들고 사회 전체의 동력을 꺼뜨리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이는 결국 기업경영에서 자멸적인 순환구조를 만들었다.
특히 금융기관의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제조업의 1인당 생산성은 개별적인 차이가 크지 않지만, 금융업의 1인당 생산성은 무한대의 차이를 보인다. 이 때문에 금융업은 원초적으로 성과급 배분에 관해 극단적으로 탐욕에 빠지기 쉬운 구조였고, 그 점은 경영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 금융기관들이 무너진 이유는 경영자들의 스톡옵션과, 파생 딜러들에 대한 성과급이 핵심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미국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들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금융기관의 부실을 막기 위해 정부가 사실상의 공적자금 투입에 가까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금융기관 스스로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입사원 초임 삭감과 임금 동결, 명예퇴직 등을 통한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은행 임원들에게 대규모의 스톡옵션을 주기로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부랴부랴 일부를 취소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민간 기업의 일이기는 하지만 은행에 공적 자금을 투입한 정부로서는 반드시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더 이상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 참에 국가 경제를 혼란에 빠뜨렸던 책임이 진짜 어디에 있었는지 철저하게 가려야 할 것이다.
참으로 ‘금준미주는 천인혈(금동이의 좋은 술은 천인의 피)’이라는 춘향전의 한 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박경철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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