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적으로 물어보겠다. 한국 정부는 외신기자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브렛 콜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자)
“그렇지는 않다. 다만 은행의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액 비율) 등을 다룰 때 한쪽만 보고 쓰면 단견(短見)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전달해 달라는 것이다.”(노대래 기획재정부 차관보)
26일 제주 서귀포시 KAL호텔에서 열린 ‘한국 경제와 외신보도’ 특별세미나에서는 한국 경제의 실체를 놓고 외신기자들과 정부 고위 관료들 사이에 팽팽한 설전이 오갔다.
먼저 노 차관보는 ‘최근 경제 동향과 정책 방향’ 주제 발표를 통해 “한국 경제에 대해서도 여러 시각이 존재하는데 어두운 면만 비추면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UBS, 크레디트스위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이 미국이나 영국보다 국가위험도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종구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외채가 3805억 달러로 지나치게 많다는 우려가 있지만 발주 선박이 인도될 때 정산되는 선수금처럼 갚을 의무가 없는 외채를 제외하면 잠재적인 리스크가 있는 외채는 2778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의 콜 기자는 당국자들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비판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 같다. 외국 전문가들과 한국 내의 평가가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따지듯이 물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신흥국 중 한국이 세 번째로 외환위기에 취약하다’고 보도해 정부가 반론을 게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상임위원은 “세부 자료를 제공받지 못한 상황에서는 대외채무가 많다고 오해하고 치우친 분석을 할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는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도널드 커크 CBS 라디오뉴스 기자는 “금융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왜 설명하지 않느냐”며 “10년 전 은행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대기업들이 부실대출을 늘렸던 것이 외환위기의 원인 중 하나였는데 재벌들이 은행 지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고 물었다. 최근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대기업이 은행 지분을 4%에서 10%로 더 많이 소유할 수 있도록 한 조치가 옳은지를 지적한 것. 이 상임위원은 “한국의 금융산업은 아직 뒤떨어져 있어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를 국제수준과 비슷한 정도로 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계속되는 외신의 부정적인 보도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외신과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맹주석 CBS 뉴스 기자(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는 “정부의 설명이 한국 경제의 사실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오보를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브리핑 관행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자세로 설명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CBS, CNN, 뉴스위크, 로이터 등에서 26명의 외신기자가 참석했다. 발표가 끝나고 열린 만찬에는 최근 외신 보도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반영하듯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서귀포=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