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억짜리 中企 물려주려면 세금만 15억

  • 입력 2009년 3월 28일 03시 03분


한금태 삼영기계 사장이 17일 대전 대덕구 대화동 회사 사무실에서 35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며 겪었던 일들을 설명하고 있다. 대전=장강명 기자
한금태 삼영기계 사장이 17일 대전 대덕구 대화동 회사 사무실에서 35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며 겪었던 일들을 설명하고 있다. 대전=장강명 기자
삼영기계 한금태 사장 ‘아찔한 상속세’ 실제 견적 내보니…

“1975년에 맨손으로 삼영기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돈이 없어서 세를 얻어 창고에 공장을 차렸죠. 1981년에는 하루하루 어음 막느라 갖은 고생을 했고, 1999년에는 미국 회사에 소송을 당해 미국에서 하루 1, 2시간만 자면서 재판 준비를 했습니다. 재판에서 졌으면 회사 문 닫았어야 했어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상속이고 뭐고 생각할 틈이 있었겠습니까?”

선박·기관차 엔진부품 생산업체인 삼영기계의 한금태 사장(68)은 스스로를 ‘기술자’라고 불렀다. 남들도 모두 그렇게 인정한다. 그는 국산 제품 개발과 품질 향상 등의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세 차례, 철탑산업훈장과 석탑산업훈장을 각각 한 차례 받았다.

17일 대전 대덕구 대화동 삼영기계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그날 처음으로 회계법인에 기업 상속 문제를 상담했다고 했다.

“제가 좀 있으면 일흔입니다. 물려줘야죠. 그런데 세금을 내면 회사가 어려워지게 생겼습니다.”

이는 한 사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산업화 1세대 상당수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상속세 개편 문제는 해마다 나오는 재계의 ‘해묵은 이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다음 달 한국세무학회와 상속세제 개선을 위한 공동학술 세미나를 열어 이 문제를 공론화할 계획이다. 지난해 재계가 상속세 문제 공론화를 시도한 지 꼭 1년 만이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해 4월 한승수 국무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상속세를 폐지해야 한다”고 건의하며 쟁점화를 시도했다. 같은 달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기자간담회에서 “상속세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이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면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 밝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기업주에게 상속세가 얼마나 심각한 고민거리인지 일반인은 쉽게 알기 어려웠다. 우호적인 여론도 형성되지 않았다.

○ 현금 쪼들리는데 10억 세금은 재앙

대한상의 계산에 따르면 삼영기계(주물공장인 삼영GTM 포함)의 주식 이동 및 증여 상황을 근거로 한 사장의 장남이 가업을 잇는 데 내야 할 세금은 내년 기준으로 15억 원가량.

이는 회사 가치를 58억여 원으로 봤을 때의 수치로, 2002년과 2004년에 가족에게 주식 일부를 주면서 증여세로 납부한 4억4400여만 원에 남은 지분 51.23%를 장남이 내년에 물려받으려면 내야 하는 상속세 10억5100여만 원을 합한 금액이다. 중소기업에 적용되는 기업상속공제 등 각종 공제 혜택도 감안한 액수다.

하지만 실제 상속세액은 15억 원을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

삼영기계와 삼영GTM의 회사 가치를 2004년 증여 당시 평가된 주식가치로 58억여 원이라고 가정했지만 회사가 이후 급속히 성장했기 때문이다. 2004년 당시 삼영기계 연간 매출액은 148억여 원이었지만 지난해 매출액은 461억 원에 이른다.

가업 승계하자니 세금 낼 돈이 없고

보유주식 팔아 내자니 경영권 걱정

“주식으로 상속세 물납땐 장남 지분 77% → 55%로

세율50% OECD 평균2배 100년 기업 꿈도 못꿔요”

항상 현금에 쪼들리는 중소기업 경영자에게 세금 10억 원은 분납이 가능하다 해도 ‘재앙’ 수준이다. 한 사장은 이미 납부한 증여세에 대해서도 “세금 낼 돈이 모이길 기다려 가며 조금씩 증여했다”며 “그 돈을 투자에 썼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말했다.

회사 공장이나 부동산은 개인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팔아 세금을 마련할 수도 없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빚을 지거나, 심하게는 자녀 명의로 새 법인을 세운 뒤 기존 회사를 폐업하거나 배당을 과도하게 해 고의로 주가를 떨어뜨리는 등의 편법 사례도 나온다.

○ “100년 기업을 만들고 싶다”

‘주식을 팔아 세금을 내면 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많다는 사실은 한 사장도 잘 안다.

“그러면 아들 대(代)까지는 대주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겠죠. 그 다음 대에서 또 주식으로 상속세를 내고 나면 이 회사가 남아 있을 것 같습니까? 전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대한상의 계산에서는 주식으로 상속세를 물납할 경우 장남의 지분은 77.75%에서 55∼56%로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제가 만든 회사가 영원히 가길 바라는 겁니다. 이런 법을 만들어 놓고 우리나라에는 100년 가는 장수기업이 없다고 한탄할 수 있습니까?”

한 사장은 삼영기계와 같은 규모의 기업에서는 가업 승계가 회사를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같은 작은 회사에 외부 경영인이 오면 자기 월급 올리는 데만 신경 쓸 것”이라며 “미국에서 경제위기가 온 것도 전문 경영인들이 자기 연봉과 주가 올리는 데만 신경 썼기 때문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많은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한 사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소기업연구원이 2007년 중소기업 1879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7.1%가 “가업 승계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8.2%는 가업 승계의 주된 장애 요인을 ‘과중한 조세 부담’이라고 꼽았으며, 48.6%는 상속세나 증여세를 납부하기 어려운 이유가 ‘현금 등 납부에 필요한 자산이 부족해서’라고 답했다.

○ 정부도 상속세 인하 추진했다 무산

한국의 상속세가 직계상속 최고세율 기준으로 50%여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26.3%에 비해 크게 높다. 또한 국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도 안 돼 소득분배 효과는 거의 없다고 재계는 주장한다.

이 때문에 재계는 상속세율을 소득세 최고세율 수준(35%)으로 낮춰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해 왔다.

정부도 상속세율을 낮추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을 지난해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세법개정안 중 상속세 부분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했다. 정치권이 부담을 느낀 탓이다.

아예 상속세를 없애고, 그 대신 상속 시점이 아니라 물려받은 재산을 현금화하는 시점에 세금을 매기는 자본이득과세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렇게 하면 기업을 물려받을 때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주식을 팔아 이익을 챙길 때에는 세금을 내게 된다는 논리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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