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자동차이야기]극한 상황 오기 전 대처를

  • 입력 2009년 3월 31일 02시 53분


자동차도 사람도 한계 다다르면 폭발

최근 개봉작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주인공 형제인 ‘자말’과 ‘살림’은 기막힌 인생유전을 겪습니다. 인도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들은 종교분쟁으로 어머니를 잃은 뒤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2000만 루피(약 5억5000만 원)가 걸린 퀴즈쇼를 매개로 전개됩니다.

특히 형인 살림은 극한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숨겨진 인간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구걸에서부터 사기와 절도 살인까지 파멸에 이르는 계단을 밟아갑니다. 빌어먹을 인생에 의해 혹사당하면서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다며 대부분은 평소에 보이지 않던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죠.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로 기계적인 한계 상황까지 내몰릴 때 저마다 독특한 시그널을 보내며 파괴적인 결론을 냅니다.

한 예로 자동차가 지속적으로 강한 횡가속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자면 엔진회전수를 최고로 올리고 작은 원형 서킷을 계속 빠르게 돌아나가는 상황입니다. 뭐 어느 정도 버티겠지 별일이야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엔진이 부서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엔진오일이 원심력에 의해 한쪽으로 몰려 엔진오일 펌프의 흡입구가 오일을 빨아올리지 못하게 됩니다. 엔진 각 부분에 오일이 공급되지 못해 금속끼리 심한 마찰이 일어나고, 곧 금속은 깎여나가거나 심한 열이 발생해 녹아내리면서 엔진 자체가 부서져버립니다. 자동차 경주에 나가는 레이싱카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엔진오일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오일이 담겨 있는 오일팬에 격벽을 설치하지만 그래도 엔진이 버텨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4월 강원 태백시 태백레이싱파크에서 열린 ‘스피드페스티벌’ 경기에서 원심력이 크고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그랜드코너를 달리던 레이싱카 한 대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엔진이 부서지는 바람에 선두권을 달리다 탈락한 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거의 경험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항상 극한 상황으로 달리는 레이싱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현상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이 같은 한계치를 얼마나 버텨내느냐에 따라 자동차의 내구성과 성능 등 궁극적인 품질이 결정됩니다. 평소에는 자동차들의 품질이 비슷비슷해 보여도 궁극적인 상황에서는 엔진과 변속기, 차체, 전기장치 등의 부품이 한계를 드러내는데 자동차 브랜드별로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경우도 극한 상황에서 품격을 잃지 않고 한계를 얼마나 버텨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가진 인품의 정도가 드러나겠죠. 그러나 한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이나 자동차 모두 한계를 시험하는 기회가 오지 않도록 미리 대처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행동이 아닐까요.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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