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싸 전기 과소비?… 시름 깊은 정부

  • 입력 2009년 4월 1일 02시 59분


비싼 원유 수입해 전기생산… 에너지 왜곡 초래

회사원 박모 씨(33)는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옥인동으로 이사했다. 이곳은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대부분의 주민들이 기름보일러를 사용해 왔다. 박 씨도 처음엔 기름보일러를 사용했지만 한 달에 약 25만 원이나 되는 기름값이 부담스러웠다. 박 씨는 부담을 덜기 위해 전기 패널 2장(3.3m² 크기)을 설치했다. 하루 8시간 정도 사용하는데 전기료는 10만 원 안쪽. 두 달이면 기름보일러를 사용할 때보다 구입비와 시공비(약 30만 원)만큼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개인적 관점에서 보면 박 씨는 현명한 선택을 했다.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봐도 현명한 선택일까.

○ 전기료 5.8% 인상에 그쳐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등유 가격은 L당 연평균 123.6%, 경유는 138.1% 올랐다. 하지만 전기료는 5.8% 오르는 데 그쳤다. 전기료가 싸지자 국민들은 전기 소비를 늘렸다. 같은 기간 등유와 경유(전기와 대체재가 아닌 수송용 경유 제외) 소비는 각각 52.7%, 9.8% 줄었지만 전기 소비는 38.3% 늘었다. 특히 화훼 및 축산 농가, 상가 주인들이 기름난방을 전기난방으로 앞 다퉈 교체했다. 물류업계는 각종 하역장비를 경유 구동방식에서 전기식으로 개조하는 추세다. 2007년 기준 한국 제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전기 소비량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1.4∼2.2배로 높다.

문제는 전기 사용은 ‘에너지 왜곡’을 불러온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등유나 경유, 액화천연가스(LNG) 등 1차 에너지를 열로 바꾸면 약 80%의 효율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1차 에너지를 발전소에서 전기로 만들어 전기보일러로 난방을 하면 효율은 약 35%로 줄어든다. 특히 발전(發電)할 때 1차 에너지의 약 60%가 사라진다. 원자력을 제외하고 1차 에너지로 전기를 만드는 것은 전체 발전량의 약 60%다.

KDI는 1차 에너지를 전기로 바꿔 난방을 하는 바람에 연간 9000억 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추정했다. 게다가 난방은 시설투자 때문에 약 10년을 지속해 사용하는 특징이 있어 에너지 왜곡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한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에너지를 전량 수입하는데 전기료가 싸다 보니 국민이 전기 과소비를 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원유 수입을 늘리게끔 해 무역수지를 악화시키고 경기회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경기회복땐 인상 저울질

한국의 전기료는 2007년 기준으로 일본의 59%, 영국의 56%에 불과하다. 값싼 전기료는 몇 년 후 소비자에게 칼날로 되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전기사업법 등에 따르면 전기 사용의 주무 부처(지경부) 장관이 물가 관련 부처(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전기료 인상·인하를 인가하도록 돼 있다.

이윤호 지경부 장관도 3월 18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녹색성장산업의 비전과 발전전략’ 강연에서 “에너지가격 메커니즘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선 경기가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면 전기료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시기는 밝히지 않았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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