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김혜승 씨(32·경기 화성시)는 최근 인터넷쇼핑몰에서 세 살배기 아들용 청바지로 ‘갭(Gap)’ 제품을 구입했다. 백화점 매장에서 본 것과 똑같은 바지가 ‘정스톡’ 제품이라며 절반 가격에 나와 있었다. 상품 설명에도 ‘통관 당시 라벨이 손상되었고 어렵게 구한 제품’이라고 쓰여 있었다. 김 씨는 당연히 진품 재고일 것이라고 생각해 바지를 샀지만 나중에 백화점 제품과 비교해 보았더니 상표 위치가 다르고 허리 부분도 재질이 다른 ‘짝퉁’이었다.
주부 박현주 씨(33·서울 구로구)도 한 인터넷 카페에서 ‘로스’ 제품이라며 판매하는 짐보리 유아복을 공동 구매했다. 옷의 상표가 손상되어 있었지만 판매자는 수입면장을 제시하며 “중국에서 정식 수입해 통관된 제품이고 통관 과정에서 상표가 손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씨는 의심 없이 제품을 구매했고, 1일 기자와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진품을 구매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관세청 측은 “진품이라면 수입 통관 과정에서 왜 상표를 손상시키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수입면장 역시 적법한 수입 신고를 거쳤다는 것일 뿐이므로 진품과 가짜를 가리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쇼핑몰에서 ‘짝퉁’ 브랜드 제품을 진품인 양 속여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상술이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 이른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과정에서 발생한 ‘로스(Loss)’ ‘스톡(Stock)’ 제품이라고 속이는 것이다. ‘스톡’은 OEM 방식으로 생산됐지만 주문자에게 납품되지 못하고 남은 상품들을 가리키는 말. ‘로스’는 주문자가 불량이 발생할 것에 대비해 하청업체에 5∼10% 초과 주문을 하고 불량률이 그보다 낮을 경우 남는 제품을 말한다. 업자들은 ‘정스톡’ ‘정로스’처럼 ‘정’자를 붙여 정품으로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같은 의류 업계의 전문 용어가 ‘짝퉁’을 진품처럼 포장하는 상술로 변질된 것이다. 실제 인터넷쇼핑몰에 들어가 ‘정스톡’ ‘정로스’를 검색했더니 수십 개의 의류 제품이 올라와 있었다. ‘스톡’ ‘로스’ 제품을 파는 판매자들에게 기자가 전화를 걸어 유통경로를 묻자 판매자들은 전부 “카피가 아니고 로스다” “정품 생산 업체에서 제작된 정스톡이다” “스톡이라 사이즈가 없다”고만 주장했다.
대체로 유명 브랜드 본사들은 ‘스톡’ ‘로스’를 소각 처리하는 등 철저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스톡’ ‘로스’ 제품이 쇼핑몰에 대량 유통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일모직은 상시 단속팀을 운영해 ‘로스’가 유출된 것이 적발되면 협력업체와의 계약을 취소한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로스 발생률을 줄이기 위해 협력업체에 제공하는 여유 원단을 5%까지 줄였기 때문에 실제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접하긴 어렵다”면서 “시중에 나도는 ‘로스’는 대부분 가짜”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로스’ ‘스톡’이라며 유통되는 대다수의 의류는 중국 카피 제품이라는 게 패션업계 전언이다. LG패션 관계자는 “이런 카피 제품은 상표권자만 단속할 수 있고 병행수입 업체들은 신고만 할 수 있다”며 “브랜드 본사에서는 카피 제품의 수준이 현저히 떨어지므로 적극 단속을 하지 않아 계속 시장이 커지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 김기범 상품 2팀장은 “인터넷쇼핑몰에서 정가보다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파는 제품들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다”며 소비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