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씨는 “애초에 준비한 1억 원대 초반의 자금으로는 강남권의 10년 이상 된 허름한 빌라를 전세로 얻는 것도 쉽지 않았다”며 “전세금을 마련하려고 7년간 부어온 보험도 위약금까지 물고 해약했다”고 말했다.
○ 소득은 줄었는데 호가는 높아져
본격적인 결혼 시즌을 맞아 최 씨처럼 신혼집을 찾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예비부부가 늘고 있다. 경제위기로 급여가 줄어들고 주가 급락으로 펀드 등 투자손실이 커졌지만 신혼부부들이 선호하는 지역의 집주인들은 집값이나 전세금 호가를 좀처럼 낮추지 않는 상황이다.
신혼집을 구하지 못해 결혼을 미루고 있는 회사원 박모 씨(30)도 집주인의 ‘배짱 호가’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박 씨는 “집주인들이 뉴타운 등 각종 호재를 강조하며 하루가 다르게 집값을 올려 부르는 통에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2000년 이후 가파르게 상승한 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집값도 자금여력이 많지 않은 예비부부들에겐 부담스럽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소형 저가 주택이 많아 신혼부부들이 선호하는 서울 노원, 도봉, 강북구의 최근 9년간 아파트 매매가는 172%, 전세금은 83% 올랐다. 이는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아파트의 매매가와 전세금 상승률 173%, 75%와 비슷한 수준이다. 부동산114 김규정 부장은 “신혼부부가 선호하는 강북지역은 2006년 전후로 뉴타운 등 각종 호재에 힘입어 2배 이상 급등했지만 고점 대비 하락률은 20%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서울 외곽 보금자리주택을 노려라’
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꺼리며 문턱을 높이는 것도 예비부부들에게는 큰 어려움이다. 다음 달에 결혼하는 회사원 오모 씨(32)는 요즘 신혼집 문제로 잠을 설친다. 신부 직장과 가까운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남부터미널 인근에 66m²(20평) 빌라를 간신히 구했지만 전세금 1억3000만 원 중 대출로 충당하려던 3000만 원을 갑자기 구할 수 없게 됐기 때문. 오 씨는 “대출해주기로 한 은행에서 지난해 연봉이 4000만 원이 안 돼 곤란하다고 며칠 전 전화를 했다”며 “3년간 투자한 국내 주식형 펀드 등도 50% 이상 손실이 난 터여서 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몇몇 시중은행에서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알아본 회사원 이모 씨(27·여)는 “신규 대출은 가산금리가 높게 적용된다거나, 결혼 한 달 전에만 대출이 가능하다고 하는 등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돈 빌리기를 사실상 포기했다”고 말했다.
스피드뱅크 박원갑 부동산연구소장은 “대부분의 회사원이 임금 동결이나 감봉, 투자 손실 등으로 실질 소득이 줄어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며 “불편하더라도 서울 외곽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지역이나 택지지구에서 나오는 신혼부부 보금자리주택 등을 노려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