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매킨토시와 아이팟(iPod) 디자인의 성공이 세련미 덕이라고 말한다면 핵심을 놓친 것이다. 문화적 아이콘(icon)이라는 화두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시장에서 말하는 아이콘은 특정 제품군 혹은 계층을 대표하는 상품이면서 동시에 문화현상으로 확장된 제품을 말한다. 예컨대 스카치테이프나 루이비통 백, 새우깡은 베스트셀러이긴 해도 아이콘은 아니다. 별다른 문화를 형성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킨토시와 아이팟은 베스트셀러를 넘어 아이콘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젊은이가 이 제품을 선망한다. 제품에 대해 한두 가지 의견은 갖고 있어야 뒤처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매킨토시 관련 커뮤니티가 늘고 그곳에서 제품 관련 정보와 제품들이 맞교환된다. 골동품이라도 되듯 구형 모델을 수집하는 컬렉터들도 있다. 이런 현상을 디자인의 세련미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15, 16년 전만 해도 매킨토시는 곧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많았다. 인터페이스가 편리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가격이 비싸 소비자들의 마음에 저항감이 있었다. 초보자용이라거나 그래픽용 컴퓨터라는 편견도 있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한 1997년경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다양한 기능의 디지털 기기가 보급되고 서로 연동되면서 멀티미디어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PC는 엄숙한 첨단기기가 아닌 오락과 업무가 혼재된 토털 미디어로 재인식됐고 소비자들은 컴퓨터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주목했다. 이 점이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를 강조한 매킨토시와 맞아떨어졌다.
세간에 널리 퍼진 ‘디자인의 세련미가 매킨토시 성공의 비결’이라는 믿음에는 소비자들의 자기합리화를 돕는 심리적 도구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합리화를 돕는 것은 광고전략의 하나다. 그럼 매킨토시는 왜 베스트셀러를 넘어 문화적 아이콘이 될 수 있었을까. 이를 위해 애플사에서 한 일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고가정책을 꾸준히 추구했다. 즉 서비스 제일주의와 명품주의를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것이다.
둘째, 디자인을 쉽게 바꾸지 않는 가치주의 전략을 택했다. 다른 브랜드들은 해마다, 심지어 분기마다 디자인을 바꾸지만 매킨토시는 귀금속처럼 가치가 오래간다는 인상을 소비자들에게 심어 주었다. 이 점에서는 소니의 바이오도 비슷하지만 애플만은 못하다. 여기까지는 스티브 잡스가 CEO로 복귀하기 이전부터 해 오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차별화된 스타일을 추구했다. 스티브 잡스 복귀 뒤 조너선 아이브가 디자인 책임자가 되면서 차별화전략은 더 강력해져 파워맥, 아이맥 등의 디자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매우 현명한 전략이었다. 치열한 경쟁 하에서 상대 브랜드를 압도할 세련된 스타일을 만드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차별화는 다르다. 디자인의 기본 방향인 철학만 차별화하면 스타일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따라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