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대로, 마음을 열다
기업-고객 쌍방향 브랜드 SK텔레콤 ‘생각대로 T’
스토리텔링 마케팅 도입
소비자들 가사 바꿔 부르며
자신의 이야기로 채워
‘T’ 브랜드 친구처럼 느끼게
‘띵딩띠딩띵∼.’
휴대전화가 연결된 직후 들리는 1.7초의 멜로디. ‘솔미파라솔∼’의 벨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생각대로 T’라는 가사를 흥얼거리게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면 되고’라며 위안을 삼았던 노래. 너도나도 ‘비비디바비디부’를 외치며 일상 탈출을 시도하는 마법의 주문. 이런 유행의 중심에 SK텔레콤의 ‘생각대로 T’가 있다. 소비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브랜드 ‘생각대로 T’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당신 자신의 이야기…스토리텔링 2.0
‘기업은 브랜드보다 고유한 이야기를 팔아야 한다’는 미래학자 롤프 옌센의 지적처럼 이야기의 중요성은 마케팅에서 여러 차례 강조돼 왔다. 200년 전 에비앙 마을의 샘물을 마시고 신장병을 치료했다는 프랑스 레세르 후작의 설화나 베트남전에서 주머니 속 지포라이터가 총알을 막아냈다는 이야기가 주목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SK텔레콤의 ‘생각대로 T’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기업의 이야기가 아닌 ‘소비자의 이야기’를 담아 차별화를 꾀했다. 이전에는 이야기를 만들고 전파시키는 것이 기업의 몫이었다면 ‘생각대로 T’는 이 역할을 소비자에게 넘긴 셈이다.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이야기. 기업과 소비자의 쌍방향 소통을 통한 새로운 브랜드 마케팅, ‘스토리텔링 2.0’이다.
‘생각대로 T’를 알리기 위해 만든 ‘되고송’은 멜로디만 있을 뿐 고정된 가사가 없었다. ‘보고 싶으면 전화하면 되고’(친구 편) ‘부장 싫으면 피하면 되고’(직장인 편) 등 CF마다 가사가 달랐다. 이 광고가 인기를 얻으면서 패러디 가사가 쏟아졌다. 가정주부는 ‘반찬 없으면 외식하면 되고’라고, 대학생은 ‘취직 안 되면 알바 뛰면 되고’라고 노래했다.
소비자가 자신의 ‘생각대로’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SK텔레콤은 브랜드에 소비자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이 캠페인을 주도한 박혜란 SK텔레콤 브랜드 전략실장(상무)은 “과거에는 ‘스토리’에 무게를 뒀다면 ‘생각대로 T’는 ‘텔링(이야기를 만들고 전파시키는 방식)’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요즘 소비자는 소비와 생산을 함께 하는 창조적 소비자”라며 “스토리텔링 2.0은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는 마케팅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쉽고 편하게” 생각대로 다가가기
2006년 SK텔레콤이 선보인 통신 브랜드 ‘T’는 텔레콤(telecom), 테크놀로지(technology), 톱(top), 트러스트(trust) 등의 머리글자를 상징한다. 의도는 좋았지만 너무 차갑고 이성적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SK텔레콤의 서비스가 당신을 만족시킬 것’으로 자신하는 공급자 중심의 브랜드 로고도 도마에 올랐다.
이때 ‘생각대로’라는 브랜드 슬로건이 탄생했다. 완성된 문장이나 명사(名詞)가 아닌 부사(副詞)의 슬로건은 파격적이었다. 처음에는 회사 내부에서도 일부 반발이 있었다. ‘완성되지 않고 불안한 느낌’ ‘최첨단 서비스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쉬운 느낌’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결국 SK텔레콤은 어깨의 힘을 뺐다. 소비자에게 쉽게 말을 건네기로 했고 그것이 통했다. 소비자 사이에서 ‘기술 지향적이고 이성적이던’ SK텔레콤은 ‘고객 지향적이고 감성적인’ 회사로 거듭났다. 황혜정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생각대로’라는 브랜드 슬로건을 붙이면서 T를 소비자들이 편하게 받아들이는 효과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소비자를 향한 적극적인 구애 공세
사람들의 입에 ‘∼하면 되고’나 ‘비비디바비디부’가 오르내리게 된 데는 적극적인 광고를 통한 ‘물량 공세’도 한몫을 했다. 광고 집행 횟수를 일정 수준 유지하는 한편 여러 버전으로 소비자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줬다.
지난해 ‘생각대로 T’가 발표된 이후 전파를 탄 이 브랜드의 TV CF만도 40여 편이고 신문 광고는 50여 종에 이른다. 기본 CF의 편집을 바꿔 조금씩 변화를 준 버전이 수십 가지가 더 된다. 장동건, 비 등 톱스타를 기용해 주목도를 높였다. 이 CF를 제작한 광고대행사 TBWA코리아의 한상필 차장은 “다양한 소재의 광고는 메시지 전달 타깃 범위를 넓히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띵딩띠딩띵’의 친근한 멜로디와 세련된 브랜드 로고도 효과를 봤다. 쉬운 브랜드 슬로건이 멜로디, 로고와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평가도 있다. MP3플레이어 아이리버를 디자인한 유영규 레인콤 디자인총괄 이사는 “뫼비우스의 띠를 차용한 ‘생각대로 T’의 브랜드 로고는 처음 발표됐던 ‘T’ 로고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진화한 이미지”라며 “소비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친숙한 브랜드”라고 분석했다.
○무한한 확장 가능성 가졌지만…
전성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확장성’에서 ‘생각대로 T’의 성공 이유를 찾았다. 전 교수는 “영상통화나 인터넷 브라우징 등의 기술적 요소를 강조한 경쟁업체의 브랜드는 처음에는 주목도가 높았지만 나중에는 소비자들이 기능이나 서비스만 기억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이에 비해 브랜드 자체를 강조한 ‘생각대로 T’는 확장성 또는 유연성에서 강점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런 유연성은 오히려 ‘생각대로 T’의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김유경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생각대로’라는 슬로건은 소비자에게 브랜드 이미지인 ‘realizing(상상의 실현)’을 전달하는 데는 적합했지만 ‘생각대로 T’와 소비자의 실질적 혜택과 연결시키는 데는 미흡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는 ‘무엇이 생각대로 인지, 또 어떤 혜택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런 파격적인 브랜드 마케팅이 다른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최순화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SK텔레콤의 마케팅 전략은 소비자와 오랫동안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전략”이라며 “기본적인 신뢰 관계가 구축돼야 실험적인 광고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스피드 011 → TTL → T로 화려한 진화▼
SK텔레콤은 휴대전화번호 앞 세 자리 숫자를 딴 ‘스피드 011’이라는 브랜드를 1997년부터 10년 가까이 사용해 왔다. SK텔레콤만의 독자적인 번호인 ‘011’ 브랜드는 차별화 효과가 컸다. 1등 이미지가 강했다. 각각 ‘016’과 ‘019’를 쓰던 KTF, LG텔레콤이 넘기 힘든 장벽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SK텔레콤의 브랜드가 신세대의 감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없지 않았다. ‘아저씨들이 쓰는 전화’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1990년대 후반 이동통신 시장에 KTF, LG텔레콤, 한솔 등 새로운 이미지를 가진 강력한 경쟁자들이 등장하는 바람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었다.
SK텔레콤은 국면 전환을 위해 1999년 젊은층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브랜드 ‘TTL’을 내놓았다. TTL 브랜드 마케팅은 파격적이었다. 아무 설명 없이 물속에 있는 단발머리 소녀만 비춘 뒤 ‘스무 살의 011, TTL’이라는 문구를 비추는 식이었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이 티저광고(회사명을 가리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광고)는 큰 성공을 거뒀고 SK텔레콤은 세련된 브랜드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문화마케팅의 성공전략’ 보고서에서 TTL을 국내 10대 문화마케팅 대표 사례 중 하나로 꼽으며 “배타적이고 신비스러운 판타지로 승부를 걸어 성공했다. 낡은 이미지를 탈피하고 장기적인 성장의 디딤돌이 된 브랜드”라고 평가했다. 이후 SK텔레콤의 브랜드 전략은 탄탄대로였다. 대표 브랜드인 ‘스피드 011’을 앞세우고 ‘TTL’, ‘네이트’, ‘팅(ting)’, ‘멜론’ 등의 하위 브랜드를 배치해 한동안 이동통신 시장을 지배했다.
하지만 SK텔레콤은 2005년 이 브랜드 전략을 뿌리부터 흔들어야 했다. 정부의 번호이동제 시행으로 KTF, LG텔레콤 가입자도 ‘011’을 사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3세대(3G) 서비스부터는 번호를 ‘010’으로 통합해야 했다. 더는 ‘011’이 SK텔레콤만의 것이 아니게 됐다. SK텔레콤의 브랜드 변경은 불가피했다. 때마침 등장한 KTF의 ‘쇼(SHOW)’가 큰 인기를 얻으며 위협했다.
한동안 방황하던 SK텔레콤은 ‘스피드 010’, ‘SK텔레콤’ 등의 브랜드를 내세웠지만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T’였다. ‘T’는 10여 년 동안 사용한 기존의 브랜드를 버리고 맨땅에서 출발해 빠른 시간 안에 브랜드 이미지를 새로 구축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생각대로 캠페인’에서 올해는 ‘비비디바비디부 캠페인’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올해는 이들 캠페인을 통신 서비스와 연결해 더욱 구체적인 이미지로 전환하는 것이 목표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