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직 발령’ 충격 딛고 이 악문 새출발 다짐
팀내 궂은일 도맡고 고된 출장 마다안해
성과 인정받아 팀장 복귀
20년 이상 한국광물자원공사에서 근무한 K 팀장은 지난해 8월 인사에서 보직을 받지 못했다. 10여 명의 팀원을 지휘하던 그는 하루아침에 평사원으로 내려앉았다.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기에 본인은 물론 사내 임직원들도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회사 측은 K 팀장에게 “열심히 일하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아래 직원들의 불만이 너무 크다. 조직 장악력이 떨어져 팀장으로 부적합하다”고 통보했다.
동료 평사원 중에는 15년 후배도 있었다. 이 때문에 약 한 달 동안 K 팀장은 적응을 못했다. 그는 고민 끝에 ‘명예퇴직’을 결심했다. 체념과 좌절로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의 마음에 재도전의 불길을 지핀 것은 두 아들이었다. 그가 가족에게 퇴직 결심을 털어놓으려던 날 큰아들은 서울대 공대, 작은아들은 인천과학고 합격통지서를 내밀었다. 그런 가족 앞에서 차마 퇴직하겠다고 할 수는 없었다.
K 팀장은 회사가 실시하는 재활교육과 정신교육, 사회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 월말 결산을 하고 경영평가자료를 만드는 등 팀 내 막내들이 해야 할 일들도 도맡았다. 그의 재기에는 타고난 글재주도 한몫을 했다. 북한과 광물 개발을 협의할 때 메시지를 작성하는 역할을 그가 맡게 된 것. 광물공사 인사팀은 “지난해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어 북한의 광산개발 계약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K 팀장이 북한 사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창구였다”고 평가했다.
사실 그 전에도 일에 대한 열성에서 K 팀장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다만 가혹한 기준을 팀원들에게도 적용하다 보니 인화(人和)에 문제가 생겼던 것. 하지만 다시 한 번 평사원으로 돌아가 일을 하면서 그는 다시 태어났다. 회사 측도 그의 변신을 인정했다. 지난달 말 인사에서 신사업을 개발하는 비금속팀장으로 재발탁한 것이다.
이 회사 C 소장도 K 팀장과 비슷한 사례다. 그는 30년이라는 세월을 광물공사와 함께했다. 소장이 된 뒤에는 20여 명의 부하직원을 관리했다. 하지만 그 역시 지난해 인사에서 보직을 받지 못했다. 회사는 C 소장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후배를 팀장으로 앉혔다. 기운이 빠진 C 소장은 계속 사표를 만지작거렸다고 그의 동료들은 전한다.
하지만 C 소장 역시 마음을 달리 먹었다. 김신종 광물공사 사장이 지난해 8월 인사를 발표하며 “인사에서 배제된 이들은 소외감을 느끼지 말고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연구해 건의해 달라. 그러면 재기할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기 때문. C 소장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자청했다. 특히 강원도 오지의 광산을 개발하는 지방 출장을 자주 다녔다. 일반 사원들은 “오지 출장은 고되고 별 성과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퇴근도 항상 오후 10시를 넘겼다. 어느덧 후배들이 하나둘 C 소장을 따랐다. 회사 측은 3월 인사에서 C 소장을 지방사업소장으로 다시 배치하며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와 적극성이 눈에 띄어 재발탁했다”고 말했다.
K 팀장과 C 소장은 지난해 8월 광물공사 인사에서 실장 및 팀장급 간부사원 45명 중 보직을 받지 못한 9명에 속했다. 하지만 ‘패자부활전’에서 실력과 열정을 보여 당당히 팀장과 소장으로 복귀했다. K 팀장과 C 소장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의 무보직 간부들은 앞으로 1, 2년 안에 제대로 된 성과를 보여주지 않으면 퇴출될 운명이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