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힘에 의해 주가가 오르는 현상
시장에 풀린 돈이 증시로 몰려 일어나죠
유동성 장세는 말 그대로 유동성, 즉 돈의 힘으로 주가가 오르는 현상을 말합니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돈을 갖고 주식시장에 몰리면서 주가가 올라가는 것이죠. 코스피는 지난달 초 1,018.81에서 이달 6일 1,297.85로 한 달여 만에 27.38% 올랐고 코스닥지수도 지난달 초 349.71에서 이달 6일 447.94로 28.08% 올랐습니다. 지난달 초 국내 증시에 1만 원을 투자한 사람들이 한 달여 만에 평균 2700∼2800원을 벌었을 정도로 높은 상승률입니다.
보통 증시는 상장된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지거나 증시에 돈이 많이 들어올 때 상승합니다. 전자를 실적 장세, 후자를 유동성 장세라고 부릅니다. 지금은 전 세계 경기가 안 좋은 상황이라서 기업들의 실적이 단기간에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힘듭니다. 이 때문에 지금 주가가 오르는 것이 유동성 장세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금융시장에 왜 유동성이 풍부해진 것일까요.
지난해 하반기(7∼12월)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기업과 투자자들은 현금을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모두 투자는 하지 않고 은행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MMF)와 같은 안전자산에 돈을 넣어 두었습니다. 은행들도 기업이 돈을 빌려간 뒤 갚지 못할까봐 대출을 꺼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금융시장에 돈이 돌지 않았죠.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이 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 벌어졌죠. 상황이 심각해지자 각국 정부는 국채를 찍어내는 등의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해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했습니다.
유동성 장세가 본격화되려면 금융시장에 풀린 돈이 채권, 예금 등과 같은 안전자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위험자산인 주식시장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미 유동성 장세가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것인지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다릅니다. 하지만 금융시장에 풀린 돈이 지금부터 꾸준히 주식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데는 대부분의 금융시장 전문가가 동의합니다.
금융시장 지표를 보면 이러한 ‘돈의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선 대표적 안전자산인 MMF 잔액이 줄고 있습니다. 지난달 MMF에서는 4조4400억 원이 순유출됐습니다. 위험자산인 주식형펀드로는 지난달 660억 원이 순유입됐습니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 맡겨 놓은 돈인 고객예탁금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국내 주식을 꾸준히 사들이는 것도 좋은 징조입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서는 6차례 정도의 유동성 장세가 있었는데, 이때도 외국인 투자가들이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여 주가가 올랐습니다.
그럼 지금처럼 주가가 오르는 추세는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요?
기업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주식시장에 돈이 들어오는 것은 투자자들이 ‘주가가 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주가가 올라 기업가치에 비해 싼 편이 아니라면 주가가 추가로 상승하는 데도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죠. 주가가 싼지 비싼지를 판단할 때 사용하는 지표로 주가수익비율(PER)이 있습니다. PER는 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으로, PER가 낮으면 이익에 비해 주가가 낮다는 것이므로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PER가 높으면 이익에 비해 주가가 높다는 뜻입니다. 현재 코스피의 PER는 12, 13배로 2000년대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주가가 싼 수준이 아니므로 주가의 추가 상승은 제한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한편에서는 “지금 주가는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돼 일시적으로 비싸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곧 경기가 회복되고 기업실적이 좋아지면 PER 수준도 정상화되고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주장이죠. 주식시장은 투자자들의 심리, 각종 경제지표 등이 반영된 결과물입니다. 그만큼 주가의 향방은 예측하기 힘듭니다. 앞으로 돈의 흐름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고 주가는 어떻게 움직일지 유심히 지켜봅시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