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선 “고위험 투자자만 움직여” 경계론도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안전자산만 찾던 투자자들이 7개월여 만에 시선을 위험자산으로 돌리고 있다. 일단은 고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들이 먼저 움직이고 있지만 주식과 파생상품 투자, 공모주 청약에 이어 서울 강남권 부동산에도 시중자금이 몰리고 있다. 텅 비었던 증권회사의 객장에 투자자들이 돌아오고 점심시간에는 주식계좌를 트러 온 샐러리맨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런 흐름을 두고 유동성 증가와 경기회복의 기대심리가 커지면서 나타나는 본격적인 ‘머니 무브(Money move)’ 현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머니마켓펀드(MMF)로 자금이 다시 들어오는 데다 대표적인 위험자산인 국내 3년 만기 비우량(BBB―) 회사채 금리는 여전히 높아 투자심리가 본격적으로 회복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 주식, 부동산으로 몰리는 시중자금
7일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코스닥 기업 공모주 청약 9건에 몰린 개인자금(기관투자가 제외)은 약 3조 원에 이른다. 50%만 있으면 청약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6조 원에 이르는 뭉칫돈이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대기했던 셈이다. 예비주식투자 자금이라고 할 수 있는 고객예탁금도 작년 말 대비 4조 원이 늘어 현재 13조 원을 넘어섰다. 예탁금이 13조 원을 넘은 것은 코스피가 2,000을 돌파한 2007년 11월 이후 1년 5개월여 만의 일이다. 한국투자증권 압구정점 관계자는 “텅 비었던 객장이 다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며 “점심시간에 몰려온 직장인들은 새로 나올 공모주에 대해 문의하거나 주식계좌를 새로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주가가 투자 방향과 반대로 가면 원금을 잃을 수 있는 고위험 파생상품인 주식워런트증권(ELW)의 거래대금도 연일 늘어나고 있다. 6일 ELW의 거래대금은 7824억 원으로 지난 주말의 사상 최고치(7810억 원)를 갈아 치웠다. 가격 회복 속도가 가장 늦을 것으로 예상됐던 서울 강남권의 재건축아파트 가격도 오름세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 43m²형의 시세는 7억2000만 원으로 지난해 말에 비하면 1억8000만 원이나 올랐다.
○ 전문가들 “구조조정 끝나봐야”
하지만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1일까지 8조631억 원이 빠져나간 MMF에 며칠 만에 다시 5조 원이 넘게 들어오는 등 시중자금이 위험자산으로 본격적으로 이동했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공모주 투자자는 낮은 가격에 청약 받은 주식을 빠른 시간에 팔고 수익을 실현하려는 사람들로 이들이 위험자산을 선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가격의 회복세도 실제 거래로 인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부동산연구실장은 “강남권 재건축은 여유자금이 몰리면서 매수세가 나타난 게 아니라 정부의 규제완화 효과로 급매물이 들어가면서 가격이 회복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상당수 전문가는 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현재 12%대인 국내 3년 만기 비우량 회사채 금리가 작년 8월 수준인 10.2% 수준으로 회복돼야 시중자금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의 자금쏠림 현상이 단기간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인 것은 긍정적이다. KB자산운용의 이원기 대표는 “세계경제가 조정을 받더라도 지난해보다 더 큰 충격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중국 경제의 회복과 미국 주택가격 하락의 진정세, 경기선행지수의 회복 등을 고려하면 돈이 위험자산으로 추가적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