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요구한 '본인확인제'에 대한 구글 코리아의 답변은 'No(안된다)!'로 결론 났다. 이로써 앞으로 구글의 동영상 공유사이트인 유튜브(Youtube.com)에서는 한국인이 올린 동영상과 댓글을 접하기 어려워 질 전망이다.
물론 한국 누리꾼들이 유튜브 사용 페이지를 한국 이외 글로벌이나 다른 국가로 설정해놓으면 동영상과 댓글 등의 게시물 올리기가 가능하다. 글로벌 사이트를 이용하더라도 한국어 설정을 해놓으면 해당 사이트를 한글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본인확인제 실시를 거부함에 따라 구글은 한국 시장에서 차근차근 쌓아왔던 영향력을 급속히 잃을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구글이 한국 시장을 포기한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중국 정부의 검색 제한에는 굴복한 구글이 왜 한국 정부의 정책에는 반기(反旗)를 드는가?"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포털 산업의 특성상 정부와 갈등이 불거질 경우 시장 확대는 요원한 일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 같은 여러 위험 요인에도 불구하고 구글이 실명제를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 4월1일 본인확인제 확대 실시
4월1일부터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작성할 때 반드시 본인 확인을 거쳐야 하는 사이트가 153개로 대폭 확대됐다. 지난해 실시된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영향인데, 방송통신위원회는 올해 초 하루 방문자 10만 명이 넘는 사이트 가운데 대상 사이트를 선정해 통보한 바 있다.
구글의 다양한 서비스 가운데 이 기준에 해당되는 곳이 바로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다. 이미 유튜브는 국내 누리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최적의 망명지'로 선택 받는 곳이다. 이는 UCC가 갖고 있는 일부 정치적 민감성에 기인하는 바 크다.
올해 초 중국이 티베트의 평화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장면이 유튜브에 올라 전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물론 이 같은 동영상은 중국 내 포털에서는 삼엄한 검열로 인해 등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튜브 역시 중국에서 접속할 수 없었기에 중국 밖 누리꾼이 이를 등록했지만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 티베트 상황을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됐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여름 촛불시위를 생중계한 몇몇 동영상 업체와 누리꾼들이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다음 아고라에서 활약한 미네르바가 구속되면서 적잖은 누리꾼들이 유튜브로 이동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동영상이나 메일계정에 대한 수사기관의 감시로부터 안전한 곳이 구글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과연 이번 방통위의 본인확인제 확대 실시에 대한 구글코리아의 대응이 큰 주목을 받아왔다.
● 민감한 UCC와 정부의 갈등
전 세계 최강의 인터넷 기업으로 평가받는 구글은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각국 정부는 물론 소비자들과 다양한 마찰을 빚어 왔다.
구글이 제공하는 위성사진 서비스인 '구글 어스'는 각국 정부의 군사 비밀을 무차별 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든지, 전 세계의 거리 사진을 보여주는 '스트리트 뷰'는 사생활 침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밖에도 최강으로 평가 받는 구글 검색은 '아동 포르노' '도박' '나치' '파룬궁'등 다양한 검색 소재에 따라 각국 정부의 다양한 검색 제한 조치 요구를 받아야 했다.
한국은 인터넷이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로 알려졌지만 '북한 선전' 사이트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검열을 실시하는 국가로 손꼽힌다. 도박이나 포르노 사이트는 물론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사이트는 예외 없이 제한 대상이다.
이 같은 검색제한이나 금지어에 대한 요구는 오히려 쉽다는 것이 구글 측의 반응이다. 문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담긴 UCC와 실명제를 통해 이를 막으려는 정부와의 갈등이다.
구글 레이첼 웨트스톤 부사장은 이미 지난해 이번 갈등을 예견한 듯 "논란이 되는 컨텐츠를 다루는 일은 가장 어려운 과제 가운데 하나"라면서 "그럼에도 다른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사회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신호"라고 말하며 사실상 본인확인제를 채택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우려와 기대 속에 9일 구글의 결정이 전해지자 국내 누리꾼들은 "역시 구글"이라는 찬사와 "정부는 이번엔 구글을 압수수색 해보라"는 조롱이 빗발치고 있다. 국내 대형 포털들이 앞다퉈 '본인확인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데 반해 글로벌 기업인 구글은 '사이버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다는 찬사인 셈이다. 현재 유튜브 공식 블로그에는 국내 누리꾼들의 감사 인사가 쇄도하고 있다.
● 구글이 본인확인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진짜 이유
이번 구글의 '저항'은 구글 본사의 결정일까, 아니면 구글 코리아의 자체 판단일까?
인터넷 업계 안팎의 해석은 '정치적 의사결정이라기보다 비즈니스적인 판단일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당연하게 글로벌 차원의 의사결정이라는 얘기다.
얼마 전 구글 코리아의 이원진 사장이 블로거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구글은 전 세계 모든 서비스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 하나만 어떤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 것을 그 근거로 꼽는다.
전 세계 그 어떤 나라도 시도하지 않는 본인 확인제를 실시하려면 한국 이용자들에 대해서만 주민등록 번호나 혹은 여타의 실명인증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전 세계 거의 수십억명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가 불과 4000만 명, 보다 정확히는 100만 명 안팎의 사용자를 위해 하나의 원칙을 깨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게다가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 대한 정책도 혼란과 번거로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당시 간담회에서도 이 대표는 "개인적으로는 유튜브가 전체 시스템에 대한 규칙을 바꾸면서까지 굳이 한국에서 있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것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한국 누리꾼이 구글의 서비스를 이용 못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비교적 작은 시장인 한국에서의 모험이 전체 인터넷 시장에 악영향을 끼칠지 모른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1일 전후 구글이 한국 정부가 시도하는 '인터넷 실명제'에 참여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며 영어권 누리꾼들은 이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워싱턴 포스트' 인터넷 판은 구글의 '사악해지지 말자'라는 사시가 한국에서 시험받게 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 오늘 이후 한국 사용자의 유튜브 동영상 등록이 100% 금지된 것도 아니다. 사이트의 '국가설정' 코너에 서 'South Korea'대신 다른 국가를 선택하면 자유롭게 동영상 등록과 댓글 작성이 가능하다.
문제는 방통위 입장에서 이 같은 구글의 행태가 한국 정부를 조롱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 방통위가 이를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위반으로 해석해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나 시정명령을 내리게 될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구글의 선택을 지켜본 방통위는 특별한 제제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그러나 유튜브라는 '사이버 망명지'의 존재는 '본인확인제'를 확대하려는 방통위의 무거운 짐이 될 전망이다. 게다가 전 세계 여론은 과연 어떻게 흘러갈까? 인터넷 미디어의 발전을 지켜보는 매우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