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곳곳에서 투명한 플라스틱판에 촘촘히 박힌 램프들이 갖가지 색깔의 빛을 뿜어냈다. ‘OPEN’ ‘××× 회사’ 등 광고물로 제작된 전자회로 기판 위에는 흥미롭게도 전선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표적인 부도체 중 하나인 플라스틱에 전기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상근 탑 나노시스 대표는 “첨단 탄소나노튜브(CNT) 기술에 그 비결이 있다”고 설명했다. 탄소나노튜브란 흑연에서 추출한 탄소 원자 6개를 원하는 모양으로 배열해 만든 신소재. 원자 단위의 결합에서 얻을 수 있는 특수한 속성 덕분에 구리와 비슷한 수준의 전기 전도성을 갖고, 뛰어난 열전도율에 철강보다 100배나 높은 강도를 갖고 있다. 이 회사는 투명한 탄소나노튜브를 플라스틱 기판 위에 얇게 코팅해 전선 없이도 램프를 켤 수 있는 ‘마법’을 부렸다.
탑 나노시스는 휴대전화의 터치패널로 사용할 수 있는 ‘CNT 박막필름’(탄소나노튜브로 얇은 투명판을 만든 것) 기술도 개발해 본격적인 양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처럼 각종 첨단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데는 아주대 공대 연구교수를 거친 오 대표의 경력이 밑바탕이 됐다. 오 대표는 일본 도쿄공업대에서 화학 박사학위를 받고 텍사스 A&M대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탑 나노시스 전체 직원의 30%가량도 관련 분야 석·박사 출신으로 탄소나노튜브 연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높은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아 탑 나노시스는 교육과학기술부의 ‘프런티어 기술개발사업’ 연구과제로 선정돼 연간 4억 원을 지원받고 있다. 이와 함께 CNT 박막필름화 기술 등으로 국제 특허 8건과 국내 특허 23건을 잇달아 출원했다.
줄곧 연구를 해오다 처음 기업경영을 맡게 됐다는 오 대표는 “기술벤처는 태생부터 불확실성이 큰 게 사실”이라며 “경영자로서 직원들에게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과 비전을 심어주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광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