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올해 ‘잔인한 봄’이 닥칠 것이라 짐작했다. 그리 틀린 예상도 아니었다. 실물경기 지표로 본다면 올해 1분기가 최악이다. 1월에 돌아본 상장회사들은 거의 올해 사업계획조차 못 세우고 있었다. 심지어 재고 원료가 소진될 때까지만 일단 공장을 돌려 본 뒤 다음 행보를 결정하겠다고 체념한 기업도 있었다. 그런데 역시 환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누차 강조했지만 세계 최고 품질의 상품을 이 정도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3월 들어 일부 가전공장은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당연히 3월 무역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로 났다.
비판적인 분석도 있다.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줄었는데도 수입이 더 많이 감소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무역수지 흑자가 났고, 수출 품목도 한정돼 있어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상 최대의 400억 달러 무역 흑자를 기록한 1998년에도 수출은 동기 대비 20% 이상 감소했었다. 국내 경제는 1998년을 기점으로 급격한 회복세를 보였다. 더구나 하반기에 세계 경제가 회복될 확률이 높아지고 있어 환율이 급속히 떨어지지 않는다면 무역 흑자는 1998년 기록을 경신할 수도 있다.
여기에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뜻밖의 합의가 도출됐다. ‘서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정도의 결론만 도출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만큼 각 나라가 위기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또 그렇게 고집을 피우던 유럽중앙은행도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했다. 게다가 한국에 가장 중요한 사안인 보호주의 배격에 합의했고 한국이 차기 회의 의장국을 맡은 것도 순풍에 돛 단 격이다. 글로벌 경제체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과 이익이 반영될 수 있음은 역사적인 일이다.
증시가 봄바람과 함께 오르고 있다. 단순히 투자할 곳이 없어 돈이 증시로 몰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무리 갈 곳이 없어도 희망이 없는 곳에 구렁이 알 같은 돈을 밀어 넣을 투자가는 없다. 다만 최근 주가가 허겁지겁 오르는 것은 다소 부담스럽다. 특히 일부 종목은 유동성에 묻혀 덩달아 오르고 있다. 마음만 급하면 북한 미사일처럼 3단계가 점화되지 않을 수도 있다. 냉정함을 찾아야 할 때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