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기업, 이것이 달랐다]삼양사

  • 입력 2009년 4월 11일 02시 55분


서울 종로구 연지동의 기존 사옥을 2003년 리모델링한 ‘삼양사’ 신사옥. 삼양사는 내실경영을 통한 위기관리로 올해 85주년을 맞았다. 사진 제공 삼양사
서울 종로구 연지동의 기존 사옥을 2003년 리모델링한 ‘삼양사’ 신사옥. 삼양사는 내실경영을 통한 위기관리로 올해 85주년을 맞았다. 사진 제공 삼양사
“산업으로 사회공헌” 철학 85년간 면면히…

삼양설탕, 50년 스테디셀러

보수경영으로 리스크 적어

2007년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장수기업 메커니즘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댔다. 30년 이상 존속 기업 가운데 24년 이상 꾸준히 흑자를 냈고 최근 15년 동안 매출액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기업들만 추린 것. 올해 창립 85주년을 맞는 삼양사는 조 교수가 선별한 30개 장수기업 명단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리먼브러더스 파산 당시 미국인들은 158년간 세계 금융사를 써 온 장수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욕심이 빚은 방만한 경영이 가져온 처참한 결과였다. 반면 삼양사는 일제강점기부터 산업근대화까지 한국사의 격변기에 특유의 철학과 뚝심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

○ 산업보국과 상생의 경영

수당 김연수 창업자를 빼놓고 삼양사를 생각하긴 힘들다. 수당은 인촌 김성수 선생의 동생으로 ‘민족자본 육성과 산업보국’을 기업경영의 최대 목표로 삼고 이를 실천했다. 삼양사는 근대영농 도입을 기치로 수당이 1924년 10월 설립한 삼수사가 전신이다. 당시는 일제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만들어 전국 농토를 침탈하던 시절. 이에 수당은 호남 일대 토지를 모아 기업농 방식의 농장을 세웠다. 이어 1939년 중국 만주에 남만방적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삼양사는 영농방식과 해외진출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회 공헌에서도 기업사의 굵직한 획을 그었다. 1939년 수당이 설립한 ‘양영회’(현 양영재단)는 국내 최초의 장학재단으로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현재 삼양사는 창업주의 뜻을 이어받아 양영재단과 수당재단을 통해 지금까지 2만1793명의 학생과 학자에게 장학금 및 연구비를 지원했다. 신유근 서울대 경영대 명예교수는 “기업이 영속하려면 뚜렷한 공적 목표와 사회적 공헌이 필수”라며 “삼양사의 양영회 설립은 국내에서 본격적인 윤리경영의 효시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산업근대화를 이끈 삼양사의 저력은 위기 때 더욱 빛났다. 1927년 경영악화로 사장이 월급을 반납하던 상황에서 삼양사는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위기를 맞았다. 모두 생산설비를 줄일 때 오히려 수당은 서울 영등포에 대규모 방적공장 설립을 결정한다. 농업 비중이 절대적이던 국내 산업 여건상 2차산업의 피해는 일본에 비해 훨씬 적을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봤던 것. 또 함께 운영한 경성방직이 좋은 원사를 적기에 공급받으려면 방적공장이 필수라는 점도 감안했다.

수당의 판단은 적중했다. 경기가 곧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경성방직은 사세를 급격히 늘렸다. 1935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 자본이 국내 시장의 94%를 차지하던 상황에서 자본금이 10만 원 이상인 민족기업은 경성방직뿐이었다. 신 교수는 “수당은 단기적 성과를 좇기보다 장기적 안목으로 의사결정을 했다”며 “이는 장수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 ‘의식주’ 산업 위주로 내실 경영

‘삼양설탕’은 50년 넘게 팔리고 있는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 꼽힌다. 1950년대 주한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설탕이 전부였던 시절 삼양사는 울산에 제당공장을 세우고 삼양설탕(현 큐원설탕)을 생산했다. 삼양설탕은 1970년대까지 최고의 명절 선물로 각광을 받았다. 삼양사는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1973년 국내 제당업계 최초로 정부가 우수식품기준에 합격한 식품이나 첨가물임을 인정하는 SF(Superior Food)마크를 획득한 데 이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 납품에도 성공해 국제적으로도 품질을 인정받았다.

삼양사는 주력인 식품사업을 중심으로 창업 초기부터 꾸준한 내실 경영을 하고 있다. 상당수 대기업이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외형 불리기에만 치중하다 외환위기 직후 무너진 것과 비교되는 점이다. 삼양사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12월 현재 58%로 재무적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조동성 교수는 “삼양사는 제품의 수명주기가 긴 의식주 산업에 집중해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었다”며 “보수적 경영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한 것도 주효했다”고 말했다.

삼양사 약사(略史)

―1924년 10월 수당 김연수 창업자 ‘삼수사’ 설립(1931년 삼양사로 개명)

―1939년 최초 민간 장학재단 ‘양영재단’ 설립

―1955년 식품사업 진출 (울산 제당공장 준공)

―1984년 12월 ‘선일포도당’ 인수(1995년 ‘삼양제넥스’로 사명 변경)

―2005년 12월 중국 현지에 ‘진황도 삼양제넥스 식품유한공사’ 설립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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