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장을 움직이는가]LG전자 인사이트팀장 최명화 상무

  • 입력 2009년 4월 11일 02시 56분


지난달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트윈타워에서 만난 최명화 상무가 고객 가치 발굴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07년 4월 LG전자에 입사해 인사이트 마케팅팀을 이끌고 있는 최 상무는 남용 부회장이 지향점으로 내건 ‘뛰어난 마케팅 회사’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LG전자
지난달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LG트윈타워에서 만난 최명화 상무가 고객 가치 발굴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07년 4월 LG전자에 입사해 인사이트 마케팅팀을 이끌고 있는 최 상무는 남용 부회장이 지향점으로 내건 ‘뛰어난 마케팅 회사’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LG전자
젊은층 과시욕 직감
쿠키폰 구상할 때
빅히트 이미 예감했죠
인도 가정에 관찰용 카메라 설치
주부 생활패턴 장기간 관찰
야채칸 늘린 LG냉장고 성공시켜

지난해 2분기(4∼6월) LG전자는 ‘인사이트(insight·통찰력) 마케팅팀’을 수도권 일부 매장에 투입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름만큼이나 특이했다. ‘고객의 동선과 시선을 면밀히 분석하라.’ 이들은 고객의 양해를 얻어 특수 안경을 씌웠다. 시선의 방향이나 눈동자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안경이었다.

3개월간에 걸친 작업 끝에 인사이트마케팅팀은 기존 전시방법에 큰 문제가 있다는 점을 찾아냈다. 소비자들은 각 통로 끝 쪽에 진열된 제품에는 전혀 시선을 주지 않았다. 통로 입구에서 한번 훑어본 뒤 다른 통로로 넘어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던 것. 천장이나 제품에 붙인 화려한 문양의 알림판(POP)도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인사이트마케팅팀의 보고서가 최고경영진에 전달된 뒤 LG전자의 매장에는 한바탕 변화의 바람이 몰아쳤다. LG전자는 7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하이프라자 매장을 시작으로 지난해 말까지 각 대리점의 제품 배열을 모두 ‘ㄷ자형’으로 바꿨다. 알림판 숫자도 대폭 줄였다.

LG전자의 마케팅에서 이처럼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는 인사이트마케팅팀을 이끌고 있는 이는 최명화 상무(44). 최 상무는 미국계 경영전략컨설팅회사인 맥킨지 출신이다. LG전자로 옮겨온 것은 2007년 4월. 그해 1월 최고경영자(CEO)가 된 뒤 “제조업체인 LG전자가 세계적 회사로 도약하려면 뛰어난 마케팅회사가 돼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온 남용 부회장이 최 상무를 영입했다고 한다.

○ 실패를 줄이는 것이 곧 회사경쟁력

“히트작이 될 줄 알았습니다.” 최근 출시 150일 만에 세계 판매량 200만 대를 돌파한 ‘쿠키폰’을 두고 최 상무가 한 말이다. 그는 “개발 부서가 제품을 너무 잘 만들었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성공할 수밖에 없는 기획’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왜 쿠키폰의 성공에 이처럼 강한 확신을 갖고 있었을까.

2007년 말 LG전자의 인사이트마케팅팀과 휴대전화사업부 직원들이 중국으로 건너갔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휴대전화 1억 대를 판 LG전자지만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만큼은 ‘새끼 호랑이’에 불과했다. LG만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중저가 시장이 최대 80%에 이르는 시장. 그렇다고 무조건 싼 제품으로는 승산이 없었다.

이때 발견한 것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과시욕’이었다. 가진 돈은 적지만 패션에 민감하고 남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도시 청년층이 타깃이 됐다. 이 계층은 휴대전화의 제 1요소로 ‘풀터치스크린’을 꼽았다. 곧 “풀터치스크린폰을 200달러 밑으로만 만들면 중국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제안이 개발 부서에 전달됐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2008년 10월부터 판매된 쿠키폰에 열광했다. 최 상무는 “사업부로서는 굉장히 도전적인 과제였지만 소비자 인사이트가 확실했던 만큼 성공을 자신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인도에서 대박이 난 ‘야채 칸 냉장고’ 역시 지역의 특징을 발굴해 성공을 거둔 경우다. 수십 가정에 관찰용 카메라를 설치하고 인도 주부들의 이용 패턴을 몇 달간 살펴봤다. 여기서 얻은 결론은 “인도의 냉장고는 고기가 아닌 야채 신선도가 승부수”라는 것이었다. 야채 칸을 편히 사용할 수 있는 높이에 하나 더 만들자 제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최 상무가 회사의 경쟁력에 대한 지론(持論)을 밝혔다. “제조업에서 예측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공을 최대화하는 것 못지않게 실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전반적인 기업 활동에서 낭비를 줄이게 되는 것이죠.”

○ 고객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최 상무가 LG전자에 입사해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각 조직이 가진 장벽을 걷어내는 일이었다. 인사이트마케팅 팀장이라는 직함을 받았지만 독자적인 프로젝트 진행 욕심은 애초부터 없었다. 상품기획, 소비자조사, 제품개발, 판매, 광고 등 모든 부서가 첫 단계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함께 일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또 자신과 자신의 팀은 이를 관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정의했다.

“조직 간 교류라는 점에서 LG전자는 아직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겨우 걸음마를 뗀 단계입니다. 저의 역할이 인사이트 한두 개를 찾아내 제품 한두 개 성공시키는 것에 머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우리 팀은 고객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기본적인 활동이 고객의 요구를 고민하고 검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근간을 마련하는 일을 하는 것이죠.”

인터뷰 도중 걸려온 전화를 받은 최 상무가 수첩을 펼쳐들었다. 빼곡한 일정이 눈에 들어왔다. 첫째 주는 중국, 둘째 주는 태국 출장을 다녀온 모양이었다. 셋째 주는 인도, 그리고 마지막 주는 다시 인도네시아로 떠날 예정이었다. 그는 자신이 바쁜 이유를 진화하는 고객 덕분으로 돌렸다. “고객은 계속 변하죠. 그것 때문에 기업도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저 같은 사람이 계속 할 일이 생기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 아이들의 인사이트는 ‘대화’

이렇게 바쁜 엄마를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할까. 최 상무는 동갑내기 남편과의 사이에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 두 아들을 두었다. 그에게는 반드시 지키는 철칙이 하나 있다. 아이들도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 당장 이번 주에 자신이 누구 앞에서 어떤 프레젠테이션을 하는지 아이들에게 꼭 얘기한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엄마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면 엄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2년 전 직장을 옮길 때도 아이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제법 의젓한 큰아들은 “지금 일하는 곳이 재미있으면 옮기지 말라”고 했고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작은 아들은 맥킨지보다 LG가 더 유명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직을 종용(?)했단다.

“둘째가 어느 날 자기네 학교의 TV가 모두 삼성 제품이라고 고민을 하더라고요. 그만큼 엄마가 하는 일, 엄마가 다니는 회사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겠죠.”

최명화 상무 프로필

―1965년생

―1988년 고려대 불문과 졸업

―1994년 VPI&SU(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인스티튜트&스테이트대) 박사학위(소비자행동론)

― 1994∼1999년 영국 리서치인터내셔널 한국사무소

― 1999∼2007년 미국 맥킨지&컴퍼니 한국사무소

― 2007년∼ LG전자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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