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필립스 지음·이건 옮김
340쪽·1만5000원·다산북스
세계 경제를 이끄는 축이 움직이고 있다. 미국과 달러화가 내리막길을 걷는 반면 중국을 비롯해 새로운 경제 파워가 등장하고 있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런민은행장은 “새로운 기축통화가 필요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달러화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기 때문에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중국 주요 도시와 홍콩의 상거래 결제를 위안화로 하도록 의무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작년에는 남부 지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의 무역에 위안화 결제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위안화가 널리 사용되도록 하겠다는 예고로 볼 수 있다.
세계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이달 초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중국의 부상은 역력했다. 종래 세계 경제는 미국 등 선진 7개국(G7)이 주도적으로 이끌었으나 이번에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가가 대거 등장했고 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국제금융감독을 위한 새로운 모델과 시스템을 구축하고 달러화를 비롯한 기축통화 체제에 변화를 촉구했다. 중국이 세계 경제 무대에서 미국에 버금가는 핵심 국가로 등장한 것이다.
1980년대 말 사회주의 국가 붕괴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이자 세계 경찰의 역할을 해왔던 미국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렇다면 앞으로 미국의 위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책은 이러한 의문을 갖는 독자들에게 미국 정치와 경제의 속사정을 보여준다.
저자 케빈 필립스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정치보좌관 출신으로 지난 30년간 미국의 정치 경제에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이미 출간된 ‘부와 민주주의’에서는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해부했고 2006년 저작인 ‘미국의 신정정치’에서는 조지W 부시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책은 세계 경제위기의 진원지인 미국 금융산업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 근원을 찾아가고 있다. 금융산업에 대한 비판은 통렬하다. 책 제목 ‘나쁜 돈’은 바로 비뚤어진 금융을 뜻한다. 거기에는 가치가 떨어진 달러화를 비롯해 거대해진 금융의 변덕성과 불법성이 모두 포함된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정치는 금융을 미국 경제를 대표하는 부문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온갖 편법으로 금융을 보호하고 키웠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금융은 미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고 세계 경제위기를 촉발시켰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미국인에게 금융이란 무엇일까. 대공황 이후 1960년대까지도 미국인들은 투기, 금융, 대기업에 대해 여전히 환멸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이후 정부 지출이 급증하고 인플레 발생 등 경제 문제가 야기되면서 미국의 정책 기조는 바뀌었다. 1987년 주가 대폭락 이후 미국 정부는 금융을 미국 경제의 핵심으로 정하고 정부의 지원을 집중했다는 것이다. 상업 부동산, 주식 소유자, 페이퍼컴퍼니 등에 각종 감세 혜택이 집중되고 제조업은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1970년대까지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조업이 금융의 2배였으나 2005년에는 금융이 20%를 차지한 데 비해 제조업은 12%로 줄어들었다.
이 책은 무리하게 금융업을 지원한 결과 1980년대의 저축대부조합의 부도, 씨티은행 부실화, 정크본드 구제사건 등 금융 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미국 정부는 당시 ‘부채를 파는 상인’인 금융계를 쇄신할 기회를 놓쳐 후에 재앙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정부가 금융을 키우기 위해 소비자물가지수 등 통계를 조작하는가 하면 주식시장에 뛰어들어 주가를 떠받치는 등의 편법과 불법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투기 금융으로 인해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지위가 흔들리게 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은 반(反)금융일까. 미국 경제정책의 방향을 이 책이 제시하는 시각에서 평가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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