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의 급작스러운 시세 변화는 ‘유동성’이란 온난전선과 ‘경기 부진’이란 한랭기류가 부딪쳐 생긴 결과다. 경기침체가 물러가고 경기 반전이라는 강력한 열대성 기류가 유동성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아마 폭발적인 에너지가 분출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사태를 차분히 정리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지금이 그저 따뜻한 겨울인가, 아니면 진짜 봄의 문턱인가?” 그 차이에 따라 베팅의 정도와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계절(중장기 투자환경)을 좌우하는 중대 요인은 일자리로 당분간 대다수 기업의 고용 사정은 버거워 보인다. 과거 5년간 중국의 고정자산은 연평균 28% 늘어났고 같은 기간 미국의 수입은 매년 11%씩 늘었다. 미국 내 소비자들은 그동안 노동으로 번 것 이상을 쓸 수 있었다. 이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약 10년간 평균 3배 이상 가격이 뛴 주택시장에 힘입은 바가 크다. 하지만 지금 그로 인한 ‘슈퍼 빚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마당에 글로벌 소비엔진이 예전처럼 힘차게 돌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극소수 업종을 제외하고 지구촌 생산설비는 비교적 헐겁게 돌아갈 것이다.
날씨(단기 투자전략)를 좌우하는 으뜸요인은 유동성이다. 지금 800조 원의 단기 부동자금이 시중에 퍼져 있다. 그 중엔 투기자금도 섞여 있고 외상을 좋아하는 위험선호형 돈도 적지 않다. 해외에서는 달러화가 1년 새 두 배 이상 풀렸고 각국이 경기 부양용 돈 폭탄을 퍼붓고 중앙은행이 채권 직매입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 상황에서 대다수 글로벌 투자자들은 수익률에 크게 굶주려 있다. 얼마간의 증거금만 있으면 선물시장을 통해 이보다 20배나 더 큰 실물 원유시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게 요즘 세상이다. 지금도 전 세계에는 실물경제 규모의 3배나 되는 금융자산이 굴러가고 있다. 자산 가격은 돈 앞에만 서면 놀라운 점프력을 발휘한다.
경제지표가 일단 하락을 멈춘 것만으로도 자산가격은 그간 하락폭의 상당부분을 메울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점차 투자대상물에 대한 엄격한 ‘품질보증서’가 요구될 것이다. 주식은 금리 상승이나 환율 하락에 구애받지 않는 썩 괜찮은 기업실적이 그 보증서다. 주가가 오를수록 시장은 더 높은 등급의 보증서를 필요로 할 것이다. 요즘 같은 유동성 장세에 편승하다 보면 베테랑 투자자라도 현실에 매몰돼 혈맥을 놓치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계절감각을 차분히 되살려 우선 위험 허용 한도를 설정해 놓고 그 안에서 개구리 튀듯 움직이는 시류에 순응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김한진 피데스투자자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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