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조선사 2곳 퇴출 가능성… “과잉투자” vs “호황대비”

  • 입력 2009년 4월 15일 03시 05분


거액 투자 일관제철소도

1곳만 인정땐 파장 클듯

“방향 맞다” “빅딜식 안된다”

이해관계 따라 반응 엇갈려

정부는 ‘주요 업종별 구조조정 방향’ 보고서를 통해 업종별 최적의 경쟁사 수가 대형조선사 5개사, 일관제철소를 가진 철강기업 1개사 또는 2개사라고 밝혔다. 이는 현재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가진 국내 7개 대형조선사 중 2개 정도는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자동차, 석유화학 업계도 14일자 본보 보도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배경과 구체적인 청사진, 이에 대한 해당 업계 종사자 및 전문가들의 반응을 들어봤다.

○조선…과잉투자?

지식경제부가 이달 초 발표한 3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11개 주력 품목 중 선박류의 수출만 유일하게 지난해 동기 대비 성장했다. 그것도 61.0%로 큰 폭이다. 이에 대해 지경부 수출 담당자는 “지금까지는 3년 전에 수주해 놓은 물량으로 먹고살았지만 올해 들어 조선 수주가 급감했다. 3년 안에 조선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 조선업체는 올해 들어 수주 실적이 총 1척에 불과했다. 7대 조선소는 여기에 현대미포, STX, 현대삼호, 성동조선해양이 포함된다. 일본의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 최신호는 세계 조선업계의 공급능력이 2011년에 한국 5000만 t, 중국 4000만 t, 일본 2000만 t 등 총 1억2500만 t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수요는 2013년 이후 총 4000만 t 정도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때문에 대형조선사의 과잉투자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체들의 과잉설비 규모는 지난해 580만 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였으며, 2011년에는 3200만 CGT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중소조선사 중 7개사는 올해 1월과 3월 채권단 주도의 신용위험평가에서 기업개선작업 혹은 퇴출 대상으로 꼽혀 구조조정 중이다.

하지만 한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향후 조선시장의 물량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형조선사에 대한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과거 일본 정부의 실수를 반복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 정부는 1970년대 초반 조선경기가 급속히 악화하자 조선업종의 성장여력을 낮게 보고 생산설비 감축, 조선업체 통폐합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 후 세계 조선시장 규모는 일본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크게 늘어 생산설비를 확장한 한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주게 됐다는 것이다.

○ 철강…세계 6위 유지 목표

정부는 철강업계가 조강량 기준 세계 6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구조 개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철강산업은 국내 전체 제조업 고용인원과 국내총생산(GDP)에서 각각 2.6%를 차지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정부는 올해 내수 판매는 5361만 t, 생산량은 6006만 t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에 비해 각각 9.5%와 7.6%가 감소한 수치다.

정부는 ‘유효 경쟁’ 수로 일관제철소 1개 또는 2개사를 제시했지만 여기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포스코에 이어 두 번째 일관제철소가 될 현대제철이 내년 1월 고로(高爐)를 시운전하고 4월부터 상업생산에 들어가기로 한 상황에서 일관제철소 1개를 적정 수로 제시한다면 큰 파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1개 또는 2개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세운 것은 포스코와 현대제철 모두 안정적인 경영상황을 유지한다면 2개로 갈 수도 있지만, 세계 산업생산 수요가 감소하고 중국 브라질 등의 철강 공급량이 크게 늘면서 장기적으로 공급과잉현상이 심해질 경우 1개가 합리적일 수도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 자동차…자율 구조조정 가능성

국내 자동차 5개 회사를 3, 4개사로 줄여 집중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자동차산업 재편 방안에 대해 자동차 전문가들은 “규모가 곧 경쟁력인 자동차산업에서는 맞는 방향”이라고 공감을 표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연간 150만 대를 생산하는 미국의 크라이슬러도 독자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브랜드 가치와 효율성도 문제지만 규모 자체가 안 되는 회사는 생존이 어렵다”고 말했다.

자동차업계는 정부가 ‘시장 자율의 원칙’을 제시했듯이 현 상황에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도 많다. 법정관리 중인 쌍용자동차는 노조가 대규모 인력 감축을 포함한 회사 측의 경영정상화 방안에 강력 반발해 정부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규모와 제품 경쟁력이 떨어지는 쌍용차가 독자 브랜드로 생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어서 국내외 자동차회사가 인수하는 것이 해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나 대규모 자동차회사들도 구조조정에 나선 시점이어서 쌍용차의 매각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석유화학…엇갈리는 반응

석유화학업계도 비슷한 분위기다. 특히 업계 전문가들은 반드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지만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는 기업들은 반발했다. 김평종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본부장은 “새롭게 떠오르는 중동 석유화학업계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이번 구조조정안의 방향은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훈 미래산업연구소 소장은 “정부의 방안처럼 구조조정되지 않으면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이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테레프탈산(TPA)산업의 구조조정 대상에 해당되는 A 업체 관계자는 “이번 안을 보면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 간 ‘빅딜’이 연상되는데 지금 상황에서 이런 정책이 거론되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B 업체 관계자는 “기업이 서로 사업을 떼 주는 방식의 구조조정을 추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증권회사 연구위원은 “업계의 반발은 예상되지만 정부가 밝힌 내용이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며 “지금이 시기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데, 아이디어보다는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IT-전자는 구조조정보다 지원에 중점▼

정부는 정보기술(IT) 및 전자 업계에 대해선 구조조정 방안보다 지원책을 많이 제시했다. 이를 통해 세계 1위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게 목표다.

반도체 산업은 하이닉스의 유동성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양사 체제를 구축해 세계 1위를 유지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또 장비 및 재료업계에서 세계 톱10 기업 2, 3개사를 육성한다는 목표도 밝혔다. 현재 세계 순위 50위 이내의 국내 장비업체는 주성엔지니어링 1개사뿐이다.

디스플레이산업은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만큼 안정적인 고객관리, 원가절감 기술개발 등을 통해 ‘확고한’ 세계 1위 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또 매출 1조 원 이상의 부품소재 중견기업도 육성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장비 및 부품에 인센티브를 주어 패널 생산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기로 했다.

휴대전화 산업에 대해서도 세계 2, 3위권인 삼성, LG의 2강 체제로 가기로 방향을 정했다. 이에 따라 현 단계에서는 수출보험 한도를 늘리고 신흥시장 진출을 위한 시장 개척 지원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휴대전화 관련 중소기업이 부실화되면 인수합병(M&A) 등 다각적 대응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전자업계는 육성책 중심의 정부 방침을 대체로 환영했다. 하지만 일부 정책에 대해선 문제점도 지적했다. 하이닉스반도체 관계자는 “조기에 주인을 찾아준다는 정부의 의지가 실현되려면 시장 여건이 마련돼야 하는데 아직 적절한 매수자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중소 휴대전화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은 지원하고 중소 휴대전화업체는 M&A를 유도하는 게 적절한 정책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외환위기땐 정부 주도 이번엔 시장자율 존중▼

정부가 주요 업종별 구조조정 방향을 마련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11년 만이다. 둘 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나섰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하지만 구조조정 원칙에서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구조조정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1월 구조조정의 대원칙으로 ‘2+3 원칙’을 밝혔다. 2대 원칙은 ‘시장자율 존중’과 ‘선제적 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을 할 때는 무엇보다 채권단과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지게 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업종별 선제적 구조조정 방안도 마련했다. 아울러 △글로벌 핵심역량 강화 △업계의 자구노력 병행 △유효경쟁 유지 등 3원칙도 마련했다.

반면에 외환위기 직후에는 ‘5+3 원칙’을 내세웠다. 5대 핵심과제는 △경영투명성 제고 △상호채무보증 해소 △채무구조 개선 △핵심부문 설정 △경영책임 강화 등이다. 3대 보완과제는 △순환출자 및 부당 내부거래 억제 △제2금융권 지배구조 개선 및 금융지배 차단 △변칙상속 증여 방지 등이다. 이때는 정부가 직접적이고 주도적으로 구조조정을 이끌었다.

이처럼 구조조정 방식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11년 전과 현재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당시는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에 따라 의무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기 상황에 대비해 우리 정부 스스로 비상 시나리오를 마련한 것이다. 당장의 채무구조 개선에서 한 발 나아가 위기 이후를 대비한 글로벌 핵심역량 강화를 주요 원칙으로 정한 것도 차이점이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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