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서 내가 만든 옷 팔아요”

  • 입력 2009년 4월 15일 03시 10분


패션루키, 디자이너 꿈 ★ 쏘다

신세계 패션공모전서 이혜림 씨 대상 받아 데뷔

유통-통신판매사 장벽 낮춰 신진 패션학도 발굴 나서

‘2009년 4월 13일’은 이혜림 씨(24)가 이제 막 내딛는 ‘디자이너 인생’에서 잊지 못할 하루가 됐다. 이날부터 신세계백화점이 이 씨가 디자인한 셔츠들을 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문을 두드렸던 국내 유명 디자이너 이상봉 씨의 디자인실도 이날 그에게 “15일부터 출근하라”는 반가운 통보를 보내왔다.

2월 동덕여대 의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패션 루키(신인)’인 이 씨가 국내 백화점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팔게 된 건 진입 장벽이 높은 국내 패션 풍토에서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자금력이 부족한 패션학도들에게 백화점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 갓 졸업한 패션학도의 성공기

13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편집의류매장 ‘S de S’. ‘I know 혜림’이란 문구를 단 셔츠들이 눈에 띄었다. 이 씨가 디자인한 옷들이다. 소매를 풍성하게 부풀린 체크무늬 셔츠, 마 소재 조끼를 덧붙인 흰색 면 셔츠…. 이 씨는 신세계백화점이 배출한 디자이너인 셈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신세계가 마련한 대학생 졸업작품 공모전인 ‘아트 투 웨어’ 행사에서 대상을 받았다. 신세계는 전국 50여 개 대학 패션 관련 학과에서 출품된 3000여 개 졸업작품을 심사해 15개 수상작을 냈다. 이 씨는 이 행사에서 최고점을 받았다.

조영현 신세계백화점 바이어는 말한다. “바로크시대 의자를 옷의 칼라로 변형시킨 실험적인 디자인이었어요. 뛰어난 신인에게 우리 백화점에서 옷을 팔 기회를 주고 싶었죠.”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신세계가 직접 운영하는 편집의류매장에 납품하는 ‘씨엔’ 브랜드와 손잡고 지난달 최종 디자인을 확정한 뒤 이번에 옷을 선보이게 됐다.

○ 국내 패션계, 신예에게 눈 돌리다

매년 수천 명씩 배출되는 국내 패션학도는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대기업 ‘월급쟁이’ 디자이너로 취업하기도 힘들고, 중소기업의 처우는 박하다. 자신의 브랜드를 내는 건 더 힘겹다. 다행히도 국내에 신진 디자이너를 육성하려는 시도가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다. 세계적 통신판매회사 ‘오토’는 9일부터 홍익대 패션디자인학과 대학원생들이 디자인한 ‘홍익 meets 오토’란 옷들을 팔고 있다. 최근 열린 서울패션위크도 ‘신진 디자이너’전을 따로 마련했다.

이 씨는 패션학도들에게 모범 사례다. 그는 지난해 ‘아트 투 웨어’에 도전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들고 이상봉 씨의 디자인실에 찾아갔다. 친구에게 보라색 시폰 드레스를 입힌 뒤 머리에 살색 스타킹을 씌워 대머리처럼 연출해 찍은 사진, 에르메스 ‘버킨백’의 장식을 옷의 디자인 요소로 활용해 마치 가방을 입은 것처럼 표현한 작품 등이 담겨 있었다. 디자인실장은 “이 친구, 희한하고 재밌네. 우리 컬렉션팀과 잘 맞겠어”라고 말했다. “작가적 냄새가 나는 옷, 남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다”는 이 씨는 15일부터 이곳의 디자이너로 출근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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