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분자 감세 혜택 못받아
매물도 다시 거둬들여
부동산 시장 냉각 조짐
한나라당이 15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重課) 폐지를 골자로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 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양도세 중과 폐지가 무산되면 집을 팔려던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고 집을 더 장만하려던 투자자들도 개정안이 통과될 때까지 구입을 늦춰 부동산 거래가 다시 위축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다주택자에 대한 특혜라는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꽉 막힌 부동산 거래의 물꼬를 트기 위해 양도세 중과 폐지를 밀어붙였던 정부 관계자들도 난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 “믿을 수 없는 정부 정책”
이날 서울 강남구 C세무법인에는 세금 감면을 기대하고 집을 팔 계획을 세운 다주택 보유자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C세무법인 측은 “일부 고객들은 ‘정부 정책을 믿을 수 없다’ ‘이럴 바엔 왜 세금을 깎아준다고 발표했느냐’며 정부를 강하게 성토했다”고 말했다. 강동구 명일동 A부동산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고객들에게 정부 방침에 따라 부동산 투자 전략을 세워줬는데 결과적으로 거짓말쟁이가 된 셈”이라고 허탈해했다.
실제로 집을 팔려던 사람들은 마음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부동산 채은희 사장은 “법안만 통과되면 집을 내놓겠다고 했던 일부 대기 매도자들이 당분간 더 지켜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는 국민 혼선을 피하기 위해 국회를 상대로 한 설득 노력을 계속한다는 방침이지만 현실적으로 뾰족한 해법이 없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 혼란스럽다”며 “일단 국회에 법안을 넘겼으니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일시적 혼란보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추락이 앞으로 부동산 시장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3월 16일 ‘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전제로 양도세 중과 폐지를 발표했을 때 국회 심의가 순탄하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재정부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경우는 가정해 보지 않았다”며 강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정부 발표를 믿은 사람만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 부동산 시장 혼란 불가피할 듯
소득세법 개정안의 4월 임시국회 통과가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지난달 16일 이후 집을 처분한 3주택 이상 다주택자들은 세금감면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일반과세(6∼35%)가 소급 적용되지 않고 종전대로 45%의 높은 세율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나중에라도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현행 세율로 양도세를 낸 사람은 환급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고율의 양도세를 내야 한다.
지난달 말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56m² 아파트를 2억1000만 원에 판 A 씨는 이날 양도세 중과 폐지가 무산됐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상심했다. A 씨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라 부동산중개사사무소에 전화하니 ‘예상보다 양도세를 1500만 원 정도 더 내야 할 것 같다’고 하더라”며 “더 큰 아파트를 판 사람보다는 낫다지만 왠지 속은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계약만 하고 잔금납부 등 최종거래를 마치지 않아 아직 양도세를 납부하지 않았더라도 계약을 해지하려면 부동산가액의 10%에 해당하는 계약금을 날려야 하는 등 피해가 예상된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시중 여유자금 유입으로 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정부가 어떤 정책을 발표해도 시장 참여자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건설산업연구원 두성규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이번 혼선은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워 앞으로 추진하는 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킬 것”이라며 “정부는 명확하게 내부 방침을 정리한 뒤 정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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