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달릴 수 있다, 도약할 수도 있을까”

  • 입력 2009년 4월 17일 02시 56분


■ 쇄신안 발표 1년

투자위원회 한번도 안열려

윤종용 고문 “무사안일” 우려

쇄신안 10개 중 7개 이행

지주사 전환은 계속 검토중

“앞으로도 계속 달려 나갈 수는 있다. 그러나 예전처럼 ‘도약’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삼성그룹과 핵심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은 이런 걱정을 달고 산다. 지난해 4월 22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룹 경영의 사령탑 역할을 하던 전략기획실을 해체하겠다는 파격적 경영 쇄신안이 발표된 뒤 생긴 두통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경영인이 즐비하고 지난해 7월 출범한 ‘독립경영체제’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돼 당초 우려했던 만큼 그룹 경영이 혼란을 겪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큰 리스크도 불사하는 과감한 결단의 리더십으로 이뤄냈던 ‘반도체 신화’ ‘애니콜 신화’가 앞으로도 가능할지 아무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삼성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앞을 향해 꾸준히 달려가고는 있지만 이것이 초일류기업으로의 질적(質的)인 도약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이 전 회장과 전략기획실의 공백을 메우면서 △투자 및 사업조정 △브랜드 관리 △인사채용 등에 대한 의사결정을 신속히 하기 위해 사장단협의회 산하에 투자조정위원회, 브랜드관리위원회, 인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조정위원회는 지난해 7월 출범한 뒤 단 한 차례도 열린 적이 없다. 삼성그룹 측은 공식적으로 “투자조정위원회를 열어서 결정할 만한 특별한 사안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삼성 일각에서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요즘 삼성의 모습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이란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전자 CEO를 지낸 윤종용 상임고문도 여러 자리에서 “삼성의 전문경영인들이 과거 일본 기업의 CEO들처럼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하지 않는다면 삼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삼성 CEO 출신의 다른 인사도 “이런저런 논란과 비판이 있었지만 오너십 경영과 그룹 경영 체제는 ‘오늘의 글로벌 삼성’을 있게 한 2대 경쟁력이었다”며 “그 장점은 사라졌는데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체제는 아직 자리 잡히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금의 글로벌 경제위기는 곧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이기도 한데 삼성이 실기(失機)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고 이 인사는 덧붙였다.

한편 삼성그룹 측은 16일 “지난해 4월 22일 발표한 10대 쇄신안 대부분을 실천했다. 대(對)국민 약속인 만큼 반드시 지키겠다”는 태도를 거듭 밝혔다. 이건희 전 회장은 특검 수사에서 조세 포탈 혐의를 받은 차명 계좌를 약속대로 올해 1, 2월 모두 실명 전환했다.

삼성 측은 쇄신안에서 “누락된 세금과 벌금 등을 모두 납부한 뒤 남는 돈은 이 전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 않고 사회의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이 다짐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뒤에야 구체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회에 환원하는 자금 규모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1조 원이 넘는 거액이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삼성 측은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추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주회사 전환 문제나 순환출자 구조 해소 문제도 여전히 ‘장기 검토 과제’로 남아 있다. 쇄신안 발표 때도 “이 문제는 20조 원이 넘는 거액이 필요하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문제가 있어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전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전무와 관련된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가 항소심 때처럼 무죄 선고를 받으면 이 전무의 경영 행보가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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