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새 1, 2억 쑥쑥… 심상찮은 강남 재건축

  • 입력 2009년 4월 17일 02시 56분


서울 강남 3구의 대표적인 재건축아파트 단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의 모습. 이곳은 4월 초 재건축 사업계획서의 공람 이후 가격 상승세에 힘이 붙었다고 현지 중개업자들이 전했다. 전영한  기자
서울 강남 3구의 대표적인 재건축아파트 단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의 모습. 이곳은 4월 초 재건축 사업계획서의 공람 이후 가격 상승세에 힘이 붙었다고 현지 중개업자들이 전했다. 전영한 기자
현장선 매수 독려 “돈있으면 빨리사세요”

전문가들 “부동자금 몰린 일시적 현상”

“과잉 유동성-경기 개선 기대감 상호작용”

“3월 20일 한강변에 있는 한신16차아파트 56m²(17평)가 4억8000만 원에 팔렸어요. 4억 원대 중반이던 가격이 2주 만에 2000만∼3000만 원 뛴 거죠. 지금은 5억1000만 원에 산다고 해도 주인들이 안 팔겠대요. 집값이 이렇게 많이 오르리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서울 서초구 잠원동 최낙진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전세 등 임대차 거래밖에 없었는데 요즘은 전체 거래 가운데 매매가 60∼7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의 향방을 가늠하는 ‘풍향계’로 꼽히는 서울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 재건축아파트 가격이 최근 들어 치솟고 있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올해 1, 2월 급등한 뒤 3월 초 숨고르기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상당수 현지 중개업자는 강남 재건축아파트 시세가 앞으로 추가 폭락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 실수요자들이 움직인 결과라고 풀이했다.

○ 반포 주공 등 가격상승세 탄력 붙어

이달 초 한신9차아파트 79m²(24평)는 6억8000만 원에 팔렸다. 3월 초만 해도 6억2000만 원에 살 수 있던 아파트였다. 잠원동 동양부동산 대표는 “지금 79m²는 7억 원짜리가 몇 채 없고 7억 원 넘게 불러야 거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달 전 9억 원이던 반포주공1단지 73m²(22평)도 최근 9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반포본동 에이스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매수자들은 ‘혹시 가격이 빠지지는 않을까’ 하고 주저하면서도 1, 2월에 크게 오른 걸 보고 서둘러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L부동산 대표는 “반포주공1단지는 이달 초 재건축 사업계획서 공람이 게시된 뒤 가격 상승세에 탄력이 더 붙고 있다”고 전했다.

강남구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는 한 달 사이 전 평형대가 적게는 1억 원에서 많게는 2억 원 뛰었다. 압구정동 구정공인중개법인 대표는 “3월에 22억∼23억 원이던 구현대아파트 172m²(52평)가 지금은 25억 원에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와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도 한 달 새 5000만 원 이상 오른 채 거래되고 있다.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아파트를 사라고 적극 권유했다. 잠원동 K부동산 관계자는 “돈 있으면 지금 빨리 사세요”라고 취재기자에게 재촉했다. 대부분의 중개업소 관계자들도 “내 가족이라면 무조건 지금 사라고 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신 가족이 지금 강남 아파트를 팔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절대 안 된다. 더 기다리라고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 투자 목적보다 이사 등 실수요자 많아

요즘 강남 재건축아파트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과 사업가 자산가 등 자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귀띔했다. 최낙진 대표는 “과거와 달리 대출 한도를 다 채워 집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집을 사려고 마음먹었던 사람들이 지난해 하반기에 집값이 떨어지자 멈칫했다가 올해 들어 가격이 오르면서 사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압구정동 S부동산 관계자는 “수십 채가 거래됐는데 전세 물량이 거의 안 나온 것을 보면 투자 목적보다는 이사를 오거나 자녀를 위해 구입한 사례가 많은 듯하다”고 진단했다.

매수자들의 출신지역도 강남 위주에서 서울 강북, 경기 등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잠실동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1, 2월에는 강남에 사는 매수자가 많았지만 지난달부터는 목동, 경기 일산 분당 등 비강남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토지보상금으로 강남 아파트를 장만하는 수도권 및 지방 출신 매수자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전했다.

금리가 낮은 데다 증시는 불안하다는 판단 때문에 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리는 현상도 눈에 띈다. 대치동 C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은행은 재미없고 증시는 불안해서 싫다며 ‘그래도 믿을 건 부동산’이라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잠실동 명성공인중개사사무소 류지훈 팀장은 “요즘 강남 아파트를 사는 건 지금이 바닥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해도 폭락할 가능성은 적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건축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선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압구정동 O공인중개사 사무소장은 “환금성이 좋은 중형 아파트가 주로 거래되고 덩치가 커서 매매가 어려운 대형 아파트의 거래 건수가 적은 것은 시장이 불안정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강남 재건축아파트의 강세에 대해 실물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됐기 때문이 아니라 저금리 등으로 투자처를 못 찾은 자금이 일시적으로 몰렸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실물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지표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재건축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것은 과잉 유동성과 경기 개선의 기대감이 상호작용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반적인 경제여건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가 다시 급락할 경우의 후유증을 우려하는 지적도 나온다. 고성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업 구조조정과 부실채권 정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은 물론 경제 전반에서 제대로 된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경기침체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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