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기업, 이것이 달랐다]진로

  • 입력 2009년 4월 18일 02시 58분


85년째 한국인과 희로애락 함께한 ‘국민 친구’

부드럽게… 더 부드럽게

35도→18.5도까지 새 역사

올해로 창립 85주년을 맞은 진로의 역사를 살펴볼 책이 있느냐고 묻자, 진로 홍보팀은 두툼한 ‘진로그룹 칠십년사’란 책을 건넸다. 1994년 발행된 이 책은 화려한 과거의 영화(榮華)를 담고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이 책이 발간되고 난 3년 후인 1997년 진로그룹은 부도를 맞았고, 2003∼2005년엔 법정관리를 받았다.

하지만 진로는 다시 일어섰다. 2005년 7월 하이트-진로그룹으로 출범해 장수기업으로서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국내 주류업계, 넓게는 식품업계에서 지속 경영의 본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기업 경영에서 기업 본래의 목적인 이윤 추구 이외에 ‘장수(長壽)’가 큰 화두로 떠오른 요즘, 진로의 혁신과 도전이 주목받고 있다.

○ 소비자를 읽어라… 계속되는 진로의 도전

요즘 직장 회식 모임에서는 ‘진로 제이’가 심심찮게 술상에 오르고 있다. “참이슬(진로) 주세요” “처음처럼(롯데주류)이오” 하던 주문에 “진로 제이 주세요”가 추가된 것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과거 소주 한 병에 취하던 남자들도 ‘순한 술’인 진로 제이로는 한 병 반에서 두 병까지 마실 수 있다”며 “더 자주 술잔을 부딪치며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고 숙취도 덜해 인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진로 제이는 진로가 지난해 9월 선보인 참살이형 소주로, 섭씨 1000도에서 구워낸 활성탄소 성분의 천연 대나무 숯 분말과 규조토를 결합해 만든 첨단 필터를 이용해 제조했다. 동해 해저 1032m의 해양심층수를 넣어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진로는 지난달 이 술의 알코올 도수를 기존 19.5도에서 18.5도로 1도 낮췄다. 국내 소주업계에서 알코올 도수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9도’가 깨진 ‘사건’이다. 이규철 진로 상무는 “과거 독한 술로 세상사의 시름을 덜었다면 요즘 소비자들은 깔끔하고 부드러운 맛을 찾는다”며 “진로가 장수하는 가장 큰 비결은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소비 트렌드 변화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24년 설립 첫 해에 진로가 내놓은 ‘진로’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무려 35도였다. 1965년 30도, 1974년 25도로 도수를 낮추던 진로는 1998년 ‘세기의 히트상품’인 ‘참이슬’을 23도로 내놓아 지금까지 100억 병 넘게 팔았다. 참이슬은 현재 20.1도이며 2004년 21도로 처음 선보인 참이슬 후레쉬는 현재 19.5도다.

○ 오랜 세월 국민과 함께한 광고·판촉

1924년 평남 용강군에 설립된 ‘진천양조상회’에서 시작한 진로는 6·25전쟁으로 남하한 뒤 선진적인 광고판촉 활동을 벌였다. 국내 최초의 CM송이자 그 시절 최대의 히트곡이었던 ‘야야야 야야야 차차차’로 시작하는 ‘진로 파라다이스’로 국내 광고 분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노래는 당시 군인들은 물론이고 일반 체육대회의 응원가로 불리기도 했다.

당초 증류주를 만들던 진로는 1965년부터 희석식 소주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희석식 소주는 곡물을 증류한 알코올 95% 이상의 소주 원료인 주정에 물을 섞어 만든다. 소주의 대량생산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1967년까지 국내 소주 시장은 전남을 기반으로 한 삼학의 독무대였다. 진로는 제조기술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왕관 회수 작전’이라는 판촉활동을 펼쳤다. 소주 판매업소가 당시 왕관처럼 생겼던 진로 소주의 병뚜껑을 가져오면 보상을 해 줬다. 두꺼비가 안에 그려진 병뚜껑을 갖고 오는 소비자에겐 재봉틀과 금두꺼비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고객 경품행사도 했다. 당시 손님들은 소주 마개를 따다가 두꺼비가 나오면 마치 지금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기뻐했다. 진로는 쓴 맛(진로), 단 맛(삼학) 대결로 시작된 삼학과의 경합을 10년 만에 승리로 이끌고 이후 39년간 국내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진로는 2007년엔 전통 소주 제조법을 이용한 알코올 도수 30도의 고급 증류식 소주인 ‘일품진로’도 선보였다. 출고가 1000원 미만인 ‘친근한’ 희석식 소주가 국민 대다수와 동고동락했지만, 프리미엄급과 전통에 대한 수요도 최근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85세 진로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진로 약사(略史) ▼

―1924년 평남 용강군에 설립

―1950년대 남한으로 거점을 이전

―1951년 부산에서 ‘금련’,

‘낙동강’이란 이름으로 제품을 생산

―1954년 두꺼비 상표를 사용

―1997년 부도를 맞음

―1998년 ‘참이슬 소주’를 내놓음

(지금까지 100억 병 이상 판매)

―2003∼2005년 법정관리

―2005년 7월 하이트―진로그룹으로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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